2030 원룸족들 “침대는 빼주세요”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관악구의 한 다가구주택 앞에 멀쩡한 침대와 매트리스가 버려져 있었다. 새로 들어온 원룸 세입자가 “침대를 치워달라”고 하자, 집주인 박모(79)씨가 동네 주민센터에 폐기물 처리비 1만원을 내고 버린 것이다. 임대업을 하는 박씨는 “요즘 세입자들은 거의 침대 없는 방을 찾는데, 처음엔 창고에 치워놨다가 곰팡이도 피고 해서 요샌 그냥 버린다”며 “방 39개 중 지금 침대가 남은 방이 10개도 안 된다”고 했다. 서울대 인근에서 만난 공인중개사 김모(51)씨는 “요새 원룸 구하러 오는 대학생 10명 중 8명은 ‘침대 없는 방’을 달라고 한다”며 “신축 오피스텔은 일부러 침대를 넣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대학생·직장인들이 주로 찾는 원룸촌에서 ‘침대’가 사라지고 있다. 2030세대 세입자들 중 ‘침대 없는 방’을 찾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바닥에 자고 싶어서가 아니다. 세 들어 사는 원룸이라도 ‘내 공간의 가구는 내가 고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다.
대학생 조모(21)씨는 지난 5월 원룸을 알아보면서 일부러 ‘침대 없는 방’을 골라 보러 다녔다. 조씨는 “어느 원룸에나 있는 평범한 침대를 쓰기 싫어, 낮고 헤드(머리 쪽 뒷받침)가 없는 디자인의 침대를 인터넷에서 50만원 주고 샀다”며 “남이 쓰던 중고 침대의 찝찝함도 없고 방도 넓어 보여 좋다”고 했다. 직장인 김찬유(27)씨도 “전에는 돈을 아끼려 일부러 가구가 구비돼 있는 원룸을 찾아다녔지만, 이번에는 깨끗한 내 가구로 꾸미고 싶어 침대 없는 방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다.
집 사기 어려운 시대가 되면서, 비록 잠시 머무르는 원룸이라도 내 집처럼 꾸미고 싶다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집을 넓어 보이게 하는 낮고 헤드가 없는 침대를 두거나, 사다리로 올라가는 2층 침대를 사서 아래 공간은 소파·책상을 두는 방법 등이 인기다. 침대 청소 업체를 운영하는 박웅규(75) 대표는 “예전에 침대는 한번 사서 계속 쓰는 ‘가구’였다면 요즘 젊은이들에겐 하나의 ‘패션’이 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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