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AS] HIV 감염인 피 수혈됐다고? 감염 혈액은 수혈 전 걸러져요

김지훈 입력 2021. 10. 26. 22:16 수정 2021. 10. 2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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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AS]간염·HIV 감염인 피 수혈하고 안 알렸다? 사실과 다릅니다
[뉴스AS] 팩트체크
감사원 "적십자사 통보 않아" 지적했지만

부적격혈액제제≠바이러스가 포함된 혈액
바이러스 감염된 혈액은 수혈 전 걸러내
혈액원 아닌 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 통보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22일 경기도 고양시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의료진이 단체헌혈에 동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이 26일 대한적십자사에 대해 감사한 결과 지난 5년 동안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이치아이브이)와 비(B)형 간염 등 ‘부적격혈액제제’를 2만8천여건 수혈하고 이를 단 한 번도 수혈자에게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감사 결과를 담은 보도는 수혈을 받은 이들에게 에이치아이브이나 간염 등의 감염병이 혈액을 매개로 감염된 것처럼 읽히면서 이날 오후 뜨거운 이슈가 됐습니다. 이 독해 그대로라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그래서 <한겨레>가 이 감사 결과에 대한 독해가 사실이 맞는지 찬찬히 사실관계를 따져봤습니다.

먼저 감사원의 감사 결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감사원은 이날 발표한 감사 보고서에서 적십자사 소속 혈액원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동안 부적격혈액제제 3만2585유닛이 출고돼 이 가운데 88.5%에 이르는 2만8822유닛을 수혈하고도 이를 수혈자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유닛은 1회 헌혈용으로 포장된 혈액의 단위를 일컫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에이치아이브이 감염 요인이 확인된 부적격혈액제제가 285유닛, 비형 간염 요인이 확인된 게 81유닛, 시(C)형 간염 요인이 확인된 게 45유닛, 에이(A)형 간염 요인이 확인된 게 587유닛이라고 밝혔습니다. 마치 수백명에서 수십명에 이르는 수혈자들이 수혈을 통해 에이치아이브이나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됐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으로 읽힙니다.

하지만 사실을 확인해보니, 이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보건복지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하 관리원)과 대한적십자사의 설명을 종합하면, 먼저 명확히 해야 할 사실은 2005년 이후 국내에서 수혈로 인해 에이치아이브이나 비형 간염, 시형 간염에 걸린 사례가 한 건도 없다는 점입니다. 헌혈이 이루어진 혈액에 대한 검사 기술이 발달하면서 2005년 이후부터는 에이치아이브이 등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혈액은 수혈 전에 이미 모두 걸러낼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수혈로 HIV, B형·C형 간염 걸린 사례 0건

한발 더 나아가 관리원은 헌혈 과정에서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된 헌혈자가 이전에 했던 헌혈 사례에서 감염이 있을지도 모르는 극미한 가능성까지 확인하기 위해 이 헌혈자가 과거 헌혈한 혈액과 이 혈액을 수혈받은 사람들에 대해 역추적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즉, 평생 3번 헌혈을 한 사람이 3번째 헌혈한 혈액에서 감염병 바이러스가 확인되면 당연히 이 혈액은 사용하지 않겠지요. 게다가 이전에 2번 헌혈을 했던 혈액에도 혹시나 감염병 바이러스가 있었던 건 아닌지, 이 혈액으로 만든 혈액제제와 이 혈액제제를 수혈받은 이들까지 모두 조사하는 겁니다. 이때 수혈받은 이들에게 관련 사실을 통보하고, 동의를 얻어 혈액을 채취하는 등의 방식으로 감염 여부를 조사합니다. 물론 앞선 2번의 헌혈을 했을 때도 당연히 감염병 바이러스가 있지는 않은지 검사를 했고,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3번째 헌혈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므로 감염병 바이러스가 담긴 혈액이 수혈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조사하는 겁니다.

실제로 이 역추적 조사 결과에서도 수혈로 인해 에이치아이브이나 간염 전파가 확인된 사례는 없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역추적 조사의 대상이 되는 혈액은 아직 수혈되지 않았을 경우 엄격한 기준에 의해서 일단 부적격혈액제제로 분류하고 회수·폐기합니다. 그러니 부적격혈액제제란 감염병 바이러스가 포함된 혈액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즉, 앞서 얘기한 2만8822유닛은 사실 수혈을 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혈액이라는 얘기지요.

혈액매개감염병 추적 조사 결과도 “문제 없다”

이날 감사원의 감사 보고서에는 이 부적격혈액제제 외에도 또 다른 문제가 하나 지적됩니다. 우리가 헌혈을 하게 되면 혈액원은 이 혈액의 일부를 떼어내 검체로 10년 동안 보관을 해둡니다. 감사원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3년 동안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 진행한 혈액을 매개로 한 감염병 추적조사를 통해 이 검체들을 확인한 결과, 적십자사 혈액원을 통해 수혈된 혈액 가운데 모두 108건의 혈액에서 감염병 양성 반응이 확인됐습니다. 비형 간염 69건, 에이형 간염 39건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질병관리청 자료로 감염병 진단이 확인된 사람의 과거 헌혈 검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런 결과가 확인된 겁니다. 감사원은 이 결과를 두고 “이런 사례조차 부적격혈액 수혈 사실 통보 대상에 해당하는지 명확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혈액원은 해당 사실을 수혈자에게 통보하지 않고 있었다”며 “그 결과 부적격혈액을 수혈받은 환자가 사고를 당할 위험이 있는 경우에도 신속하게 대처할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게 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관리원의 설명은 감사원의 설명과 다릅니다. 혈액원이 수혈자에게 통보하지 않았을 뿐 관리원이 이 또한 모두 역추적 조사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모두 통보가 됐다는 겁니다. 이런 역추적 조사 결과 이 108건의 혈액을 수혈받은 이들 가운데 비형 간염에 감염된 사람은 없었고, 에이형 간염에 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만 1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게다가 이 1건도 에이형 간염의 경우 주요 전파 경로가 혈액이 아니기 때문에 수혈 외에 다른 경로로 감염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 추정 사례로 분류됐다고 합니다. 관리원은 이 1명의 수혈자에 대해 보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108건의 혈액에서는 어떻게 비형과 에이형 간염 바이러스가 발견된 걸까요? 의사인 김준년 보건복지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혈액안전감시과장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과거에 비형 간염을 앓은 사람이 치료된 이후에도 간세포에 잔존하는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유전자 검사에서 간염 바이러스의 파편이 검출돼 양성 반응이 나오기도 합니다. 검사 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검출되지 않았던 미량의 유전자가 최근에는 검출되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잔존 바이러스는 이미 전파력이 상당히 낮아진 상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08건의 혈액을 수혈해도 107건에서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고, 1건의 경우에도 감염 추정 정도로 상황이 파악되는 겁니다. 이런 사실은 감사원도 대한적십자사와 관리원에 대한 감사를 통해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감사원은 왜 이처럼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을까요?

감사원 보고서를 둘러싼 쟁점들

감사원은 이에 대해 이번 감사 결과는 실제 감염 여부를 떠나 법령상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기준을 설정하라는 지적을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관리원이 혈액매개감염병 요인에 대해서는 수혈자에게 통보하고 있지만, 헌혈금지약물과 기타 요인(헌혈유보기간 내 말라리아 지역 여행·거주·복무 경력자)에 대한 관련 규정이 없어 어느 범위까지 통보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어 이를 지적하는 취지”라는 겁니다.

그런데 감사원의 이런 취지에 대해서도 관리원은 생각이 다르다고 반박합니다. 엄격한 ‘사전주의’ 원칙에 따라서 헌혈금지약물로 분류한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은 헌혈을 금지합니다. 다만 탈모약에 사용하는 피나스테라이드 등 헌혈금지약물을 복용하던 헌혈자가 헌혈 이후에 이 사실을 통보해오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요. 이 약물의 경우 임신부 등이 직접 이 약물을 복용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수혈로 인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단 수혈이 됐을 때는 의학적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보고 사후 조처를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감사원이 ‘기타 요인’이라고 밝힌 헌혈유보기간 내 말라리아 지역 여행·거주·복무 경력자도 문제가 없다는 게 관리원의 설명입니다. 현재 말라리아 위험 지역인 수도권과 강원도 지역에서 헌혈이 이루어진 혈액에 대해서는 말라리아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말라리아에 실제로 감염된 사람의 헌혈 이력을 조사하고 이 혈액을 수혈한 사람에 대한 사후 조처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앞서 문제가 없다고 말씀드린 부적격혈액제제 3만2585유닛 가운데 83.1%인 2만7050건이 이 ‘기타 요인’에 해당합니다. 역시 말라리아가 발견된 게 아니라 말라리아 위험 지역을 다녀온 사람의 혈액일 뿐이라는 거지요. 다만 김준년 과장은 “감사원의 지적은 사후 조처가 필요없다는 점 또한 명확히 하라는 취지로 보이고, 이를 규정에 명확히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합니다. 

헌혈 안심하고 하셔도 됩니다 

최근 코로나19 유행으로 감염을 우려하거나 바깥출입을 삼가면서 헌혈이 줄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지난 1월에는 혈액 보유량이 3일분 아래로 떨어져 재난경보문자까지 발송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담기지 않은 감사원 보고서가 오해를 불러일으켜 헌혈에 대한 인식이 나빠지고 수혈을 꺼리게 되는 건 아닐까 우려가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아픈 이들이 다른 사람의 혈액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길 소원하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김지훈 이재호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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