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 천혜의 석호에..10톤짜리 콘크리트 덩어리 120개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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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동해 푸른 바다가 감싸 안은 강원도 속초 영랑호.
속초시는 13일 생태탐방로를 일반인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8천년 전 생성된 영랑호는 희소성이 높고 보전 가치가 큰 동해안의 대표적 석호다.
"속초가 속초일 수 있는 것은 청초와 영랑이라는 두개의 맑은 눈동자가 빛나기 때문이다"라는 고 이성선 시인의 '속초'의 읊조림처럼, 영랑호와 청초호에 대한 아름다움과 소중함이 절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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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간]
설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동해 푸른 바다가 감싸 안은 강원도 속초 영랑호. 10월 어느 날, 가을바람에 물억새가 흔들리고, 윤슬이 쉼 없이 반짝이는 호수. 때아닌 기계음으로 쉬고 있던 새들은 소스라쳐 자리를 뜬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부교 등 생태탐방로 사업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이를 놓고 지역 환경·시민단체와 속초시의 뜻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속초시는 영랑호 관광을 통해 북부권을 활성화하겠다며 40억원을 투입해 호수를 가로지르는 생태탐방로(부교) 1개와 수변 데크, 야외학습체험장 등을 만들고 있다. 지역 주민과 환경·시민단체들은 법원에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지난 8월 각하했다. 밤에 다닐 수 있도록 조명까지 설치되는 공사는 이달 중 마무리될 예정이다. 속초지역 시민·환경단체는 ‘사업 무효를 내용으로 하는 주민소송’을 제기했고 현장검증을 마친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은 11일 마지막 변론기일에 양쪽의 의견을 수렴한 뒤 결과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속초시는 13일 생태탐방로를 일반인에게 개방할 예정이다.
8천년 전 생성된 영랑호는 희소성이 높고 보전 가치가 큰 동해안의 대표적 석호다. 석호는 파도나 해류의 작용으로 해안선에 생기는 사주(모래섬), 사취(모래부리)로 입구가 막혀 생긴 자연 호수다. 민물과 바닷물의 중간 성격을 갖춘 독특한 지형과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원앙, 수리부엉이, 수달 등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사는 곳이며 큰고니 등이 찾아오는 대표적 철새도래지다.
영랑호는 1980년대 유원지 개발과 양어장·낚시터 운영, 인근 숙박시설의 오폐수 유입 등으로 수질이 최악인 5급수까지 악화했다가, 1993년부터 500여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수질 정화와 생태계 복원 사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겨우 얻은 영랑호의 참모습은 생태탐방로로 인해 앞으로 어떻게 바뀌게 될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폭 2.4m, 길이 400m의 부교 형태의 생태탐방로 가운데에는 지름 30m 수변광장까지 건설됐다. 다리 아래에는 길이 2.6m, 폭 2.3m의 10톤짜리 콘크리트 120개가 들어갔다. 각 구조물 사이 거리는 30㎝ 정도로 바닷물이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는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속초고성양양환경연합,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영랑호를 지키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사람들’은 지난달 18일 건설 현장에서 석호를 망치는 부교 설치 사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정부가 영랑호를 포함한 동해안 석호 18곳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제대로 된 환경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다. 속초시는 앞으로 영랑호 생태계에 대한 조사와 그에 따른 해결책을 수립할 것이라고 했지만, 영랑호에 대한 논란은 다리가 완성된 뒤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속초가 속초일 수 있는 것은 청초와 영랑이라는 두개의 맑은 눈동자가 빛나기 때문이다”라는 고 이성선 시인의 ‘속초’의 읊조림처럼, 영랑호와 청초호에 대한 아름다움과 소중함이 절로 느껴진다. 작은 상처에 새살이 돋는 데는 상처 난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연이라고 다를까. 한번 상처받은 호수를 다시 복구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 결정이 훗날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모두가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속초/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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