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애주가 6인 "나의 '추석 술친구'를 소개합니다"

이유진 기자 2021. 9.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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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소문난 애주가 6인에게 추석에 어울리는 전통술과 안주를 추천받았다. 이동필 전 농림부 장관, 가수 김연자, 요리연구가 홍신애, <술꾼 도시 처녀들> 작가 미깡, 방송인 겸 전통주 소믈리에 정준하,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교실> 요리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 사진| 경향신문DB, 이봄출판사 제공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과 풍성한 음식이 있는 추석 테이블. 대화에 윤기를 더하고 음식의 맛을 돋우는 술을 빼놓을 수 없다. 소문난 애주가들에게 추석에 어울리는 우리 술과 음식의 조합을 추천받았다. 특별한 날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환상의 마리아주.


■이동필 전 농림부 장관

오랜 공직생활을 내려놓고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 경북 의성으로 귀농한 지 벌써 5년째다. 공직에 있든 들판에 있든, 변함없는 것은 전통주에 대한 애정이다. 농사일에 전념하는 요즘, 막걸리는 빼놓을 수 없는 ‘노동주’다. 농번기에 땀 흘리고 쭈욱 들이켜는 막걸리 한 잔의 맛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평소에는 지역 막걸리인 의성 대빵막걸리, 안동 회곡막걸리, 청송 얼음골막걸리를 주로 마신다. 추석이나 설 명절에는 특별히 한산소곡주를 찾는다. 찾아오는 이들 서운하지 않도록 됫병들이(1.8ℓ)로 구비해놓고 차례상에도, 성묘 때도 애용한다. 한산소곡주는 향이 은은하며 독한 맛이 없고 목넘김이 좋아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마실 수 있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식구들과 나눠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른다. 한산소곡주는 안주를 따로 준비할 것 없이 명절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궁합이 좋다. 특히 고기산적을 안주 삼아 마시면 부드러운 술이 짭짤한 양념을 기분 좋게 중화시킨다.

·한산소곡주

충남 서천군 한산면 약 70개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한산소곡주(16도)의 주재료는 찹쌀과 말린 국화, 생강 등이다. 문헌(<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록을 토대로 문헌상 가장 오래된 술로 본다. 과거를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이 한 번 맛을 보면 일어나지 못하고 계속 마시다 결국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 하여 ‘앉은뱅이술’로도 불린다.

가수 김연자 추천, 보리굴비와 전통주 대통 대잎술. 사진| 여수 석정 보리굴비


■가수 김연자

전통주는 그 지역에서 나는 먹거리와 특산물, 조상님들의 지혜가 만나 빚어진 귀한 술이다. 고향 전통주를 만나면 마치 옛 친구를 보는 듯 반갑다. 고향 광주 근처를 지날 때면 꼭 생각나는 술이 있다. 담양 지역 전통주, 대통 대잎술이다. 담양 인근에 일정이 생기면 반드시 구입해 쟁여놓는 나만의 ‘잇템’이기도 하다. 대통 대잎술은 대나무향을 가득 담은 깨끗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대나무를 그대로 술병으로 사용하는 낭만도 깃들어 있어 외양만으로도 존재감을 발휘한다. 대나무 통 숙성으로 더해진 향기 덕분에 알코올 맛이 덜해 술을 마신다기보다는 보약을 먹는 느낌이다. 반주로 곁들이면 음식의 풍미를 한껏 올려준다. 평소에는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들들 볶은 멸치를 안주로 삼지만, 반가운 얼굴과 함께하는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는 약간의 사치를 부려 보리굴비 구이를 준비하고 싶다. 쫄깃하고 짭조름한 보리굴비 한 점에 알싸한 담양 대통주를 한 잔 결들이면 산해진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조합이 된다. 벌써 침샘이 자극된다. 아, 오늘따라 고향 친구가 보고 싶은 것은 왜 일까.

·대통 대잎술

담양의 대통 대잎술(15도)은 멥쌀과 찹쌀을 주재료로 솔잎, 인삼, 대추, 구기자, 산약, 오미자, 당귀 등 10여 가지의 한약재를 넣어 빚은 뒤 대나무에서 100일 이상 숙성시킨다. 옅은 꽃향, 맑은 단맛과 산미 등 오미의 균형이 잘 갖춰져 있다. 바디감과 목넘김이 가벼운 편이다.


■요리연구가 홍신애

명절이 되면 집 안에 고소한 기름내가 진동한다. 전, 적, 잡채, 갈비에는 차례 때 쓰는 청주나 소주도 좋지만 뭔가 상큼하게 씻겨내려주는 맛이 필요할 때 나는 애플사이더를 선택한다. 사과즙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라 새콤달콤하고 탄산도 있어 기름진 음식과 찰떡궁합이다. 대표적 명절 음식인 동그랑땡 같은 전 종류와 완벽한 마리아주다. 동그랑땡은 ①돼지고기와 쇠고기를 갈아 불고기 양념을 해두고 ②두부, 양파, 마늘, 부추, 고추, 당근을 으깨거나 다져 섞는다. ③국간장과 참기름에 달걀을 툭 깨서 넣고 잘 버무려준 다음 동전 크기로 빚어서 밀가루, 달걀옷을 입힌다. ④슬쩍 달군 팬에 숟가락으로 달걀물을 한 번 쓰윽 그어보고 달걀물이 바로 굳으면 그때부터 끝도 없이 부쳐낸다. 앞으로 뒤로 옆으로 뒤집고 굴려가면서 익힌다. 먼저 처음 30개까진 신나고 재미도 있어서 두어 개씩 집어 먹어가며 농담도 하며 부친다. 50개까지도 여유롭다. 100개쯤 되면 차가운 애플사이더 한 잔이 절로 당긴다. 시원한 애플사이더는 명절 우리집 부엌의 갈증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애플사이더 ‘댄싱사이더’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인 충주 부사로 만든 ‘스윗마마’(5.5도)와 ‘댄싱파파’(7도)는 달달한 사과맥주 같은 맛이다. 고흥 유자를 넣은 ‘신애유자’(5도)는 애플사이더 베이스에 신선한 허브향과 유자의 은은한 단맛이 더해져 명절 음식의 느끼함을 잡는 ‘리셋 음료’로 손색이 없다.


■<술꾼 도시 처녀들> 만화가 미깡 - 겨울소주25와 매운 오징어볶음

명절 음식은 대부분 기름지고 무겁다. 추석에 어울리는 술은 달지 않고 개운한 고도주 종류가 좋을 듯하여, 나의 추천술은 겨울소주25다. 오로지 순수 쌀로만 빚어 깔끔하며, 겨울이란 이름처럼 차게 마시면 입안에서 곡물의 향미가 난다. 자극 없이 부드러운 맛이 매력적이다. 나처럼 깊고 진한 술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스트레이트로, 가볍고 달달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과일청이나 주스, 얼음을 섞어 마실 수도 있다. 실제로 겨울소주25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전통주 칵테일의 베이스로 애용된다. 겨울소주25는 명절의 의무를 무사히 치른 뒤, 뒤풀이 술자리용으로 마시면 특별히 좋을 것 같다. 찬 겨울소주25와 맵고 짭조름한 요리의 강한 대비감은 명절에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로를 한 방에 날려버릴 것이다.

명절 무렵은 차례상에 오르는 명태, 대구 같은 흰 살 생선에 비해 오징어의 시세는 살짝 떨어지는 시기다. 오징어에 빨간 양념을 더해 강한 불에 살짝 볶아보자. 부드러운 술에 톡 쏘는 매운맛, 다시 부드러운 술… 술과 안주의 무한 루프를 타게 될 것이다.

·겨울소주25

청양 햅쌀이 주재료인 겨울소주25(25도)는 곡물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인공첨가물 없이 빚는 천연 발효 증류식 소주이다. 100일간 숙성한 발효 원주를 증류해 만든 원액을 다시 180일간 저온 숙성해 완성한다. 높은 도수답지 않게 입안에서 가볍고 부드럽게 감긴다.


■방송인 겸 전통주 소믈리에 정준하

한국 와인의 역사는 짧다. 본격 와이너리가 들어선 것은 1990년 후반, 우리만의 양조용 포도 품종이 없던 탓에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기 어려웠다.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 시험을 준비하며 전국 방방곡곡 양조장과 와이너리를 찾아다니던 중 대부도의 와이너리에서 만난 그랑꼬또 와인은 ‘국내산 와인’에 대한 편견을 완전히 깨뜨렸다. 그랑꼬또에 사용되는 포도는 국내산 ‘청수’ 품종이다. 그랑꼬또에는 치즈나 생선 요리도 어울리지만, 나는 술 고유의 맛을 느끼는 걸 좋아해서 최대한 간단한 안주를 곁들인다. 명절 선물로 애용되는 호두나 아몬드 같은 견과류는 어떨까. 너무 담백하다면 정과를 만들어도 좋다. 호두정과는 ①설탕이나 꿀과 물을 1:1 비율로 졸이다가 호두를 넣고 볶는다. ②끈적한 질감으로 볶아졌다면 불을 끈 상태에서 버터 한 술을 넣고 섞어준다. ③조린 호두를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에 넣어 160도 온도에 7분에서 10분 정도 구우면 바삭한 호두정과가 완성된다.

·청수 그랑꼬또 화이트 와인

그랑꼬또(12도)는 새콤하면서도 깔끔한 맛과 향, 청량감까지 지닌 세미 드라이 화이트와인이다. ‘2019 아시아 와인 트로피 골드’ 등 2014년부터 6년 연속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019년 한국·스페인 정상회담 공식 만찬 건배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포도 ‘청수’는 생식용 포도로 육성된 품종으로 산뜻한 산미가 술을 빚기에 적합해 양조용 포도로 사랑받고 있다.

요리 연구가 나카가와 히데코 추천, 두부 레몬 마리네이드와 전통주 삼해주. 사진|<히데코의 연희동 요리교실> 이봄출판사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교실> 저자 나카가와 히데코

한국 전통주 하면 고민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삼해주는 과거 서울에서 집집마다 빚어 마시던 가양주다. 정월 첫 해일(돼지의 날)을 시작으로 찹쌀과 멥쌀을 누룩으로 발효해 만들었다. 만들어진 밑술에 두 번 덧술하는 술이라 해서 삼해주라 불렸다. 덧술을 반복할수록 알코올 도수가 올라가고 술의 맛과 향이 더해지면서 좋은 술이 된다. 삼해주를 추천하는 이유는 부드럽고 향기로운 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명절 음식에 자주 쓰이는 두부로 간단하지만 특별한 안주를 만들어보자. ‘두부 레몬 마리네이드’는 미리 만들어두고 꺼내 먹을 수 있는 편리한 안주다. ①탄탄한 두부 한 모를 면보나 키친타월에 싸서 채반에 올린 후 냉장실에서 하루 동안 물기를 뺀다. ②물기 뺀 두부를 8등분해 소금을 살짝 뿌리고 보관용기에 담는다. ③레몬즙 1개, 다진 딜 2큰술, 후추 약간, 소금 1/2 작은술, 올리브오일 4큰술을 섞어 만든 마리네이드 소스를 두부에 뿌린 뒤 냉장실에서 최소 4시간 정도 재워두었다가 먹는다.

·삼해주

삼해주는 천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울 지역 대표 전통주(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다. 특정 브랜드명은 아니나, 삼해주 명인에 의해 19도 약주인 삼해주와 45도 소주인 심해소주의 두 가지 전통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은은한 맛을 비교적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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