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 전 대법관은 '화천대유'에 왜 갔을까

김남일 2021. 9. 1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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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대장동 개발사업 논란][현장에서]
권순일 전 대법관. 한겨레 자료사진

“대법관은 법관의 최고위직으로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대법관을 마치자마자 대형 로펌에 취업한다든가 해서 사익을 도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소 법관 생활을 마치고 나면 그동안 쌓았던 경험과 깊이 생각했던 바를 저술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지금 이 단계에서 앞으로 대법관을 마친 뒤 무슨 일을 하겠다, 이런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바는 없지만 변호사 활동을 포함해서 구체적인 일을 할 때에 국민의 날카로운 비판을 의식하고 그런 비난을 받을 일이 없도록 유념하겠습니다.”

권순일 전 대법관은 2014년 8월2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법관 퇴직 후 대형 로펌 취업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사청문회 마무리 즈음 대법관 취업제한 금지 기간을 늘리는 것에 대한 질문이 다시 나왔다.

“퇴임 이후에도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잘 활용하는 것이 사회를 위해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후진 양성이나 저술, 공익활동이 가장 바람직하고 국민들에게도 보기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한 제도가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변호사 활동까지 더 규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신중한 검토가 이뤄져야 된다고 봅니다.”

6년 임기를 마치고 지난해 9월 퇴임한 그는, 두 달여 뒤 인사청문회 때 말했던 것처럼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이름을 올렸다. 지난 3월과 5월에는 법조윤리 특강 등을 맡았다.

후학 양성에 나선다는 사실이 알려진 비슷한 시기 권 전 대법관은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고문을 맡았다. 화천대유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추진한 대장동 개발사업 참여를 위해 만든 업체다. 신생업체인 화천대유와 관계자들이 3년간 개발이익금 수천억원을 배당받고, 동시에 권 전 대법관 등 전직 고위 판·검사 등을 고문 등으로 영입한 사실이 알려졌다. 여야 대선 후보 경쟁자들은 이 지사 연루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이 지난 4월부터 화천대유 자금 흐름을 입건 전 조사(내사)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나며 논란은 커지고 있다.

대법관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퇴직일로부터 3년간 로펌 등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업체 취업 제한을 받는다. 공직자윤리법은 사외이사, 고문, 자문 등 직위·직책, 계약 형식을 가리지 않고 그 대가를 받는 경우를 취업으로 본다.

취업 제한을 받는 업체라 하더라도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업무 연관성, 퇴직 전 근무현황, 취업 후 영향력 행사 가능성 등을 따져 취업을 승인할 수 있다. 인사혁신처가 고시한 2020년도 퇴직공직자 취업심사대상기관(영리사기업체) 1만6002곳에 화천대유는 없다. 고시 기준이 자본금 10억원 이상이면서 연간 외형거래액 100억원 이상인 업체인데, 화천대유 자본금은 5천만원이다.

권 전 대법관이 고문을 맡기 넉 달 전인 지난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 지사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관 7대5 의견으로 무죄 판결했다. 권 전 대법관은 무죄 의견을 낸 7명 대법관 중 한 명이었다.

권 전 대법관은 본인의 이름이 거론된 직후부터 여러 언론에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법조 출입 기자로 있을 때부터 인연이 있던 화천대유 대주주로부터 고문 제안을 받았고, 업무 연관성 등에 대한 공직자윤리위 승인을 받았으며, 언론 보도 전까지 관련 의혹 등을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이번 의혹을 적극 제기하는 쪽에서도 이 지사와 화천대유 관련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신중한 태도다. 다만 이 지사 사건 하급심 판결문에 화천대유가 여러 차례 등장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대법원 심리에 참여해 무죄 쪽에 섰던 권 전 대법관이 이 판결 넉 달여만에 화천대유 고문직을 수락한 것은 논란이 불가피하다. 고위 법조인 출신들이 받는 고문·자문료 관행 등에 비춰볼 때 권 전 대법관에게도 상당한 고액이 지급됐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변호사 활동이 어려운 취업제한 기간 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업체에서 전관예우에 준하는 대우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권 전 대법관이 강조한 공직자윤리위 승인 역시 피상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있다. 취업심사대상기관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이는 화천대유 업무 관련성을 공직자윤리위가 꼼꼼하게 들여다 보기는 힘들 었을 것이다. “관련 의혹을 전혀 몰랐다”고 할 것이 아니라 권 전 대법관 본인이 신중하게 살폈어야 하는 부분이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큰 이권이 걸린 건설 관련 업체 등에서 적극적으로 법조인을 영입할 때는 보통 법률 분쟁 등에 대비한 포괄적 자문을 구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실제 금융정보분석원(FIU)은 화천대유 관계자들의 의심스런 자금 흐름을 파악하고 지난 4월 경찰에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고 한다.

권 전 대법관 나이는 62살이다. 종신직인 미국 연방대법관과 달리 한국 대법관 임기는 6년이다. 너무 일찍 최고위법관에 오르고, 그만큼 이른 나이에 법복을 벗어야 한다. 대법관 재직 시절 성인지 감수성 판례 등 사회변화를 이끌어 낸 주요 판결을 내놓았던 권 전 대법관이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은 많을 것이다.

권 전 대법관은 논란이 커지자 화천대유 고문직을 내놓았다고 한다. 그가 고문으로 있을 때 구체적으로 어떤 자문을 했고, 얼마를 받았는지 공개하는 것이 우선이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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