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는 왜 '한국산 꽃미남'을 규제 대상으로 삼을까

인현우 2021. 9. 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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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광전총국, '냥파오'를 규제 대상으로 언급
"여성적 남성성, 중국 남성과 국가를 약화시켜"
파키스탄·터키서도 '전통 부정' 반발
중국 티벳 자치구의 자시강 마을 관광지의 홈스테이 건물에 있는 TV에서 중국 토크쇼가 방송되고 있다. 뒤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이 걸려 있다. AP 연합뉴스
문화적 자신감을 강화하고, 중국의 우수한 전통, 혁명, 선진 사회주의 문화를 적극 홍보한다. 프로그램의 올바른 미적 지향을 확립하고, 출연진 선정, 공연 스타일, 의상, 분장 등을 엄격히 통제해 '냥파오(娘炮)' 같은 비정상적 미학을 단호히 종식시킨다. 사치와 향락을 과시하거나, 섹스 스캔들 등 사생활 가십, 부정적인 면 이슈화, 저속한 인터넷 유명인 등 엔터테인먼트 전반의 경향에 저항한다.

중국 국가광파전시총국 문예프로그램과 인력관리 강화 위한 통지, 2일

중국 정부가 최근 내놓은 대중문화 규제 조치가 한국 대중문화를 겨냥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규제 가운데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①과열된 팬덤 문화다. 다른 하나는 방송 규제기관인 국가광파전시총국(광전총국)이 2일 발표한 통지에 나와 있듯이 ②'냥파오', 즉 '여성적 외모를 한 남성'의 출연을 관리하겠다는 내용이다.

물론 이런 규정은 한국보다는 중국을 무대로 활동하는 중국인 연예인의 활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 인터넷을 보면 '냥파오'가 '한풍(韓風)', 즉 한국발 유행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심심찮게 등장한다. 현재 중국 정부가 대중문화의 '부정적 요소'로 규정한 것의 뿌리를 한국으로 본 것이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반응은 정치적일 뿐 아니라 문화적이기도 하다. 중국의 기성세대가 한국에서 전파된 대중문화가 상징하는 '여성적 남성성'에 느끼는 거부감이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다룬 작품에서 화장하고 머리 꾸미고..." '샤오셴로우' 비판

'샤오셴로우'가 인기를 끌면서 중국 청년층은 남성의 화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CGTN 캡처

중국 언론과 온라인에선 2010년대 전반부터 큰 인기를 모은 중국의 젊은 미남 연예인을 '샤오셴로우(小鲜肉)'라는 신조어로 불렀다. 이들은 일본의 '미소년'과 한국의 '꽃미남' 문화가 중국으로 수입되면서 등장했는데, 화장하고 머리를 꾸미고 중성적 옷을 입는 남성 스타일을 가리킨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새로운 문화를 적극 수용했지만, 장년층 이상은 '샤오셴로우'를 일종의 '문화 침략'으로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샤오셴로우는 수시로 관영 언론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비판의 논거를 보면 샤오셴로우로 분류되는 스타들이 "외모에만 신경 쓰고 연기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프로답지 못하다" "인기를 등에 업고 지나치게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광전총국이 인용한 '냥파오'라는 표현도 이들을 비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중국에서 활동한 중국계 캐나다인 연기자 크리스 우가 2017년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영화 시사회에 참석해 있다. 크리스 우는 중국에서 '샤오센로우'로 불리는 젊은 스타 중 하나였으나 7월 성폭행 혐의로 체포됐다. AFP 연합뉴스

광전총국의 발표를 앞둔 지난달 27일 광명일보(光明日報)에 게재된 한 칼럼은 "항일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이 얼굴에 복숭아빛 화장을 하고, 반짝이는 머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일부 유명인은 의도적으로 스캔들을 만들고, 팬이 순위에 투표하도록 하고, 팬들 사이의 분쟁을 선동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우습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여론은 중국 연예계에서 샤오셴로우로 분류되는 연예인들의 '일탈'적 행동이 발생하면서 불이 붙은 측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SM의 아이돌 그룹 '엑소' 출신인 크리스 우가 팬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자, 일부 팬들이 이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다.

비판 자체는 결코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2018년 관영 신화통신에 실린 칼럼은 '샤오셴로우'를 "병든 문화"라고 비판하면서 이들이 날씬한 몸에 양성적 옷을 입고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비난했다.


"샤오셴로우는 중국 남성 나약하게 만들려는 서구의 음모"

중국 애국주의를 반영한 전쟁영화 '금강천'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의 전투를 다루고 있다. 중국 정부가 '샤오셴로우'의 대체로 제시하는 '건전한 대중문화'의 예다. 유튜브 캡처

그럼 중국 정부는 왜 '샤오셴로우'를 껄끄러워 할까.

호주 RMIT대학의 중국 문화 전문 연구자인 유하이칭 교수는 호주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중국 지도층이 '강한 남성성'을 중국의 국가 이미지와 연결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샤오셴로우가 보여주는 '여성적 남성성'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유 교수는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중국이란 나라의 부상을 보여주기 위해 군사적, 경제적 힘을 더욱더 발휘하고자 한다"며 "베이징(중국 지도층)은 샤오셴로우 문화가 이런 중국의 힘을 약화할 것으로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히 정부만의 입장은 아니다. 숭겅 홍콩대 부교수는 '홍콩프리프레스'에 "중국 사회 일각에서는 '여성적 남성'이 육체적으로 약하고 정신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국가를 지킬 수 없다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 네티즌 사이에선 샤오셴로우 이미지의 확산이 중국이란 나라를 약화시키려는 서구의 음모라는 주장마저 나온다. 미국에서 전파된 문화가 일본(미소년)과 한국(꽃미남)의 남성 이미지를 나약하게 만들었고, 나쁜 영향이 중국으로 전파돼 중국 남성마저 나약하게 만들고 결국 중국이란 국가를 무너트릴 거라는 게 이런 음모론의 핵심이다.

중국 정부가 '중국 전통'이나 '혁명 정신' '선진 사회주의'의 강점을 강조하는 문화 콘텐츠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샤오셴로우'가 한류 같은 '문화 침략'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에 대비되는 마초적 남성성에 '애국' 코드를 붙여 "나쁜 외래 문화를 몰아내자"는 것이다.


K팝, 파키스탄·터키서도 "전통 가족 가치와 충돌"

1일 파키스탄 펀자브주 구지란왈라에 설치된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의 생일 축하 광고판.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등의 주장으로 인해 곧바로 철거됐다. 트위터 캡처

이런 현상은 중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한국 대중문화는 곳곳에서 각국의 '전통'과 충돌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의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판을 파키스탄 정치인이 주도해 철거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는 "BTS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터키는 아예 정부 부처가 K팝의 "악영향"을 조사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8월 29일 터키 언론들은 가족사회복지부가 "K팝이 청년들로 하여금 가족의 가치를 부정하고 성 정체성을 부정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K팝 팬덤이 빠르게 세력을 넓히고 있는 서구에서도 남성 네티즌을 중심으로 여전히 K팝 스타를 깔보는 문화가 있다. K팝 스타들을 볼 때 서구에서 아시아계를 보는 틀이 그대로 반영돼, 기존의 마초적 백안 남성성과 구분되는 '유약한 남성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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