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박탈하자"..'양궁 영웅' 안산 향한 무분별한 '혐오'

임소연 기자 입력 2021. 7. 30. 04:51 수정 2021. 7. 3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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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안산이 25일 오후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단체 결승전에서 활을 쏘고 있다/사진=뉴시스


'2020 도쿄올림픽'에서 양궁 2관왕을 달성한 안산 선수(20)가 엉뚱한 논쟁에 휘말렸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안산 선수를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면서 개인 SNS를 찾아가 악플을 다는 식의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일부는 "금메달을 줘서는 안된다"며 "대한양궁협회에 전화를 하자"는 글까지 올렸다.

안산 선수를 두고 벌어진 페미니스트 논쟁은 숏컷인 헤어스타일과 여대(광주여대)에 재학 중이라는 사실로 촉발됐다. 특히 안산 선수가 SNS에 특정 여초 커뮤니티에서 쓰는 단어를 썼다는 것이 알려지며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페미'로 굳어지고 있다.

이용자들은 안산 선수가 과거 개인 SNS에 쓴 글에서 특정 단어를 짚어가며 안산 선수에 대한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페미니스트는 믿고 거른다' '페미니스트는 응원 안 한다'라는 부적절한 비난부터 심지어 양궁협회에 항의 전화까지 하고 있다. '일베는 안되고, 페미는 되냐'는 식의 논리다.

한쪽에서는 안산 선수를 보호해야한다는 움직임이 나온다. 안산 선수가 근거없는 비방에 시달리고 있고, 협회가 선수를 보호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일부 누리꾼은 '안산 선수를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쓰인 포스터를 만들어 공유하며 양궁협회에 선수 보호를 촉구했다. 배우 구혜선과 류호정 정의당 의원 등은 숏컷 사진을 올리며 안산선수를 지지하는 입장을 냈다.

안산 선수는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거나 입장을 내비친 바 없다. 숏컷을 한 이유에 대해서는 SNS 통해 '그게 편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답변했다.

'페미'는 그 자체로 공격 대상?…"페미니즘에 관심없는 이들의 혐오"

/사진=커뮤니티 캡쳐

전문가들은 외모 등으로 '페미니스트'를 규정한 것 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자체가 공격의 대상으로 의미가 변질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남초 커뮤니티는 '남자의 기분을 불편하게 하는, 기존 여성성에서 이탈한' 여성을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안산 선수가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한 것도 아닌데 단지 머리가 짧단 이유로 소위 '좌표'가 찍혀 공격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민숙 여성학 박사(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는 "안산 선수와 관련한 이슈는 페미니즘에 대한 기초 지식이나 관심, 이해가 없는 일부 사람들의 혐오"라고 해석했다.

허 박사는 "'페미니스트' 혹은 '페미니즘'을 공격의 단어로 쓰는 것은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난 여성들에 대한 혐오의 발현"이라며 "혐오라는 것의 기저엔 '과거에 나와 달리 차별받던 사람들과 동등해지기 싫다'는 정서가 깔려있다"고 봤다.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여자가 왜 저래'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한 반감이 페미니스트 공격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페미=일베?' "비논리적 다툼에 휘말리지 말아야"
일각에선 부적절한 언어와 콘텐츠를 사용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극단적 표현법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혐에 대한 미러링으로 탄생한 남혐 커뮤니티의 활동이 다시 역미러링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 박사는 "특정 이미지나 워딩를 따다가 평면적으로 비교하면 '극단적 페미 = 일베' 라는 도식이 성립할 수 있다"면서도 "모든 문제엔 맥락과 배경이 중요하듯, 여성혐오의 역사와 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양극 간 갈등으로 치닫는 '젠더 논쟁'이 생산적인 토론이 되려면 이 논쟁과 관련한 가짜뉴스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서로 혐오를 위한 혐오를 하고 있다"며 "비논리적인 다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토론의 장을 조금씩 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평등지수와 행복지수가 모두 높은 국가들이 부유하듯, 성평등한 사회란 모두를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잘 살게 하리란 객관적 근거들을 갖고 대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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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소연 기자 goatl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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