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1] 은근슬쩍 넘어가고 말았다…철도·고속도·국도 다 풍은 추풍령
김홍준 2021. 10. 23.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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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고개, 수많은 이야기 〈11〉 교통 요충지 추풍령
스무고개, 수많은 이야기 〈11〉 교통 요충지 추풍령
다방 주인에게 물어봤다. 고갯마루가 어디냐고. 그 답이 이랬다. 으레 고개에는 정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여기는 어딘가 뜨뜻미지근하다. 워낙 낮은 데다가, 비탈이라고 할 것도 없다. 조선 조정에서도 알았다. 유생 조익이 정조에게 아뢨다. ‘본디 평탄한 길이므로 속히 방어를 계책해야 합니다(조선왕조실록 정조 9년 7월 26일).’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사이의 이 고개는 그저 눙치고 넘어가게 된다.
갑자기 싸늘해진 가을바람에 실려 왔다. 여기는 추풍령(秋風嶺). 가을바람이야 어디서나 불건만, 그 이름을 갖다 붙였다.
이 이름의 위력이 대단하다.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에는 자신이 살고, 일하고 있는 ‘추풍령’을 앞에 세운 가게들이 많다. 추풍령할매갈비, 추풍령맛고을, 추풍령부동산컨설팅, 추풍령설비…. 어쩌면 해장국집에서는 음식의 태생지인 양평과 식당이 자리잡은 추풍령 사이에서 이름을 고민했을지도 모른다.
이름 날리는 추풍령할매갈비도 원래 있던 영동군 추풍령면에 작은 가게는 남겨두고 고갯마루를 넘어 김천시 봉산면으로 갔다는데…. 고갯마루는 어디인가.
지난 19일 추풍령 노래비 있는 곳에 인부들이 뒤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다. “우린 김천서 넘어왔는기라.” 낮은 고개 하나 차이로 이렇게 억양이 달라진다. 고갯마루는 여기다. 이미 지나온 황악산 바람재의 험난함에 비하면 평지 수준이다.
지금은 술꾼보다 대간꾼(백두대간을 따라가는 산꾼)이 많다. “어휴, 새벽 3시에 헤드랜턴 켜고 집 앞에 불쑥 나타나~.” 백두대간 눌의산(743m)에서 금산(385m)으로 향하려면 추풍령에서 이 집 앞을 지나가야 한다. 안주인 이모(56)씨는 “요 앞에 버스 대놓고 갔다 오는 분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구름도 쉬어가는 고개(남상규 노래)’라지만 추풍령은 백두대간에서 가장 낮은 고개다. 221m다. 추풍령은 이렇게 ‘가장’이라는 수식어가 여럿 붙는다.
1970년 7월 준공돼 현재도 ‘가장’ 긴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 기념탑이 이곳에 있다. 당시 서울~부산간 428㎞의 절반인 214㎞ 지점이 추풍령이었다. 지금은 종점이 한남대교에서 양재나들목으로 7㎞ 가량 당겨지면서 ‘경부고속도로의 절반’은 김천으로 넘어가 버렸다.
충북 옥천에서 나고 자란 안모(55)씨는 “초등학교 때 추풍령휴게소에 동물원이 있었는데, 별천지였다”고 밝혔다. 그런데 좀 자주 갔나보다. 추풍령초등학교를 나온 이정철(49·경북 상주)씨는 “6학년까지 열한 번이나 추풍령휴게소로 봄·가을 소풍을 갔다”며 “나머지 한 번은 다른 곳에 가자는 학생들의 건의에 장소를 조금 먼 월류봉(영동군 황간면)으로 바꿨는데, 요즘처럼 버스를 대절할 형편이 안 돼 각자 자전거를 이용했다”며 웃었다. 휴게소에는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VIP룸도 있었다.
추풍령면은 일제 강점기 때 황금면이었다. 황간(黃澗)과 김천(金泉) 사이의 고을이라 각각의 앞자를 따서 지었단다. 1991년 ‘추풍령’이란 이름을 다시 찾아왔다. 당시 면장이었던 이상하옹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연락 당일인 지난 19일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향년 85세. 유족들은 “올해 추풍령이란 이름을 다시 찾아온 지 30년인데, 그 자부심이 대단하셨다”고 전했다.
추풍령 대신 근처의 괘방령 이용한 이유는
그런데, 왜군과 북한군은 진격할 때 추풍령을 넘고 퇴각 때는 이웃한 괘방령(掛榜嶺·300m)을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는 “왜군과 북한군이 두 고개를 모두 넘나들었지만, 진격과 퇴각을 구분해서 고개를 이용했다는 걸 일반화하기에는 무리”라며 “주력과 비주력부대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어느 한 고개만 이용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왜군과 북한군은 진격할 때 추풍령을 넘고 퇴각 때는 이웃한 괘방령(掛榜嶺·300m)을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이상훈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는 “왜군과 북한군이 두 고개를 모두 넘나들었지만, 진격과 퇴각을 구분해서 고개를 이용했다는 걸 일반화하기에는 무리”라며 “주력과 비주력부대의 차이가 있을 수 있어도 어느 한 고개만 이용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괘방령에서 만난 김천시 관계자는 “관로인 추풍령에서 장사꾼들은 혹시나 높은 사람에게 괜히 한마디를 들을 수 있고, 영남의 선비들은 추풍령이 더 낮고 평탄한데도 낙방을 연상시키는 이름 때문에 합격 통지를 뜻하는 괘방령을 더 이용했다”고 밝혔다. 따지자면, 왜군이나 북한군이 퇴각할 때 역시 ‘추풍낙엽’ 신세가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추풍령 대신 괘방령을 이용했을 것이라는 ‘설’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수능(11월 18일)이 지척이다. 괘방령산장 주인 백기성씨는 “괘방령에 합격 기도를 드리러 오는 분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백두대간은 남에서 북으로 황악산~괘방령~가성산~눌의산~추풍령~금산으로 올라 친다. 금산에 올랐다. 추풍령을 제대로 보려면 눌의산 정상이 낫다.
김홍준기자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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