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비트도 폐쇄 장담 못한다? 은행들, 실명계좌 시한부 연장

안효성 입력 2021. 7. 11. 18:26 수정 2021. 7. 1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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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거래소의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고 있다. 은행에서 실명 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곳만이 아니다. 시중은행들이 실명계좌 발급 제휴를 맺은 암호화폐 거래소 4곳(업비트ㆍ빗썸ㆍ코인원ㆍ코빗)과의 계약 연장 결정을 9월 24일까지 미루기로 하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된 것이다.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거래에서 검증과 사고 책임이 커지자 시중은행들이 정식 계약 대신, 시한부 계약을 맺고 시간 벌기에 나선 것이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줄폐쇄 우려도 커지고 있다.

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모니터에 비트코인 등의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케이뱅크, NH농협은행, 신한은행은 각각 업비트, 빗썸ㆍ코인원, 코빗과 실명확인 계좌 발급계약 연장 결정을 특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상 암호화폐 거래소의 신고 시한인 9월 24일까지 미루기로 했다.

시중은행은 그동안 6개월 단위로 암호화폐 거래소와 실명확인 계좌 발급 계약을 갱신해왔다. 업비트의 계약은 지난달 말 종료됐고, 빗썸ㆍ코인원ㆍ코빗 계약은 이달 말 종료된다. 이번에도 6개월 단위의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야 하지만, 이번에는 단기 연장 계약을 맺기로 한 것이다.

단기 계약 연장의 사유는 평가 지연이다. 시중은행은 특금법에 맞춰 새로 만든 평가 기준에 따라 각 거래소가 자금세탁에서 얼마나 안전한지 평가하고 있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거래소 실사가 진행 중이라 사실상 한시적으로 계약을 연장했다"고 말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도 "새 평가 기준으로 8월 안에 평가를 마친 뒤 계약 사항을 다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입출금액.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하지만 은행의 속내는 복잡하다. 암호화폐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내줬다 자금세탁 등의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은행도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 은행들은 실명계좌를 내준 뒤 거래소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은행에 책임을 묻지 말 것을 금융당국에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일 국회에서 "은행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암호화폐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주는 것이고, 괜히 잘못했다가 이익 몇 푼에 쓰러지겠다 싶으면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 위원장이 연일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해 강경 발언을 내놓는 상황에서 1호로 실명계좌를 내주는 걸 모두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라며 “아직 시일이 남은 만큼 충분히 검증하고 신고 기일이 임박하면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9월 24일까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실명계좌 등 조건을 갖춰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신고해야 한다. 심사 일정 등을 고려하면 8월까지는 은행들이 본 평가를 마무리하고 실제 재계약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은행 실명확인 계좌를 확보한 4대 거래소조차 재계약을 확신하기는 어렵다. 시중은행 입장에서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계륵’이다. 금융 당국이 은행의 면책 요구에 선을 그은 데다 암호화폐 거래소와의 거래의 실익이 크지 않아서다.

지난 1분기 시중은행이 걷어들인 수수료 수익은 케이뱅크(업비트 50억원), 농협(빗썸 13억원, 코인원 3억3000만원), 신한은행(코빗 1억4500만원) 등이다. 신한은행과 농협은행의 1분기 순이익은 각각 6546억원, 농협 4097억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케이뱅크의 경우 신규 계좌가 늘고 예치금이 늘어나는 등 효과를 봤지만 나머지 은행의 경우 자금세탁 관련 리스크 대비 실익이 적다”며 “다만 거래소와의 계약을 종료할 경우 기존 거래소 고객 등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해 쉽게 정리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평가 시 감점 항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기존보다 심사 기준이 강화된 것도 변수다. 은행연합회가 공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상장된 코인의 개수와 신용도, 거래 고객의 직업 등 다양한 요소를 평가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평가 기준에 따르면 빗썸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표자 등의 사기 연루 이력도 평가 항목에 포함되는 데, 빗썸의 실소유주인 이모 전 빗썸홀딩스ㆍ빗썸코리아 의장은 최근 검찰에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기 때문이다.

실명 계좌를 확보한 거래소를 제외한 나머지 암호화폐 거래소의 사정은 더 좋지 않다. 시중은행의 검증대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은행에서 실명 계좌를 발급받지 못하면 FIU에 신고를 할 수 없고 결국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현재 60개 정도로 추산되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무더기 폐쇄'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암호화폐 시장의 독과점 문제도 심화할 수 있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지난 1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거래소 정리 과정이 계속되면 1등 거래소의 점유율이 더 늘어날 수 있다”며 “거래소의 공정거래적 관점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업비트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80.6%로 올해 1월(55.8%)보다 크게 늘었다.

실명계좌 제휴를 받지 못한 한 거래소 대표는 "해킹 사고 등이 난 기존 거래소는 심사하면서 사고 이력이 없는 거래소에게는 은행이 검증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며 "금융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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