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인플레에 관한 역사적 교훈

여론독자부 2021. 11. 2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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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美, 2차 대전 이후 6차례 물가 급등
경기 과열에 의한 일시적 현상일뿐
스태그플레이션까진 연결되진 않아
장기적 투자계획 취소할 이유없어
[서울경제]

지난 7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가 “이번 인플레이션과 유사한 역사적 사례”라는 제하의 글을 공식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CEA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여섯 차례의 물가 급등 사례를 소개하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이 지난 1970년대의 것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과 가장 유사한 사례로는 1945년에서 1948년 사이 물가 급등을 불러온 2차 대전 종전 이후의 첫 인플레이션이 꼽혔다.

지난 수요일에 나온 물가 동향 보고서는 달갑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예컨대 현재의 물가 상승률은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보고서의 내용 가운데 CEA의 분석과 상충하는 대목은 전혀 없다. 반면 종전 후 첫 인플레이션과의 유사성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인플레이션은 1979년도가 아닌 1947년도의 물가 급등세와 닮은꼴을 이룬다.

우선 1946~1948년의 인플레이션은 장기적인 임금·물가 동반 상승의 시작이 아닌 일회성 물가 급등 사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책 입안자들은 이것이 일시적 상황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놓쳤다. 인플레이션을 더 이상 문제 삼을 필요가 없는 시점에 도달한 후에도 이들은 줄기차게 강경 조치를 이어갔고 결국 1948~1949년의 경기 침체를 불러왔다.

이제 수요일의 물가 동향 보고서를 들여다보자. 보고서를 읽어보면 이번 인플레이션은 경기 과열에 기인한 전형적 케이스임을 알 수 있다.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턱없이 부족한 데 비해 현금 구매력은 차고 넘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의 전반적인 수요가 사실상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용역에 대한 실제 지출을 의미하는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가정할 경우 예상되는 경제적 능력보다 약 2%가 낮다. 그러나 팬데믹 전에 비해 소비자들의 용역 구매가 줄어든 반면 상품 구입이 늘어나면서 수요가 왜곡됐고 이로 인해 항만과 트럭 수송, 창고 등에 과중한 하중이 실렸다. 이 같은 공급망 이슈는 전 세계적인 반도체 칩 부족, 근로자들의 직장 복귀 거부감과 맞물리며 더욱 과장됐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물가 급등 현상이다.

그렇다면 1946~1948년의 물가 급등이 2021년의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전쟁 기간 중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폭발하면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소비자 지출이 급증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경제가 거대한 수요 변화에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940년대의 두드러진 변화는 군에서 민간 분야로의 수요 이동이었다. 그리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결과는 1947년, 20% 선을 넘어선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다. 당시의 인플레이션은 현재의 물가 급등 추세와 달리 음식과 에너지·제조업 분야의 임금 성장에 국한되지 않았다. 이처럼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반영한 1947년도의 인플레이션은 22%로 정점을 찍었다.

당시 인플레이션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곧바로 끝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현재의 급속한 인플레이션에 관해 역사가 일러주는 교훈은 무얼까. 첫 번째 교훈은 일시적 경기 과열이 반드시 1970년대식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1946~1948년의 경기 과열은 장기적인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지 않았고 우리의 현 상황을 야기한 일련의 사건과 상당한 유사점을 지닌 1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역시 장기적인 물가 급등을 불러오지 않았다.

별 영양가 없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채권 시장은 이번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임을 가리킨다. 2년 후 만기인 물가연동채권은 현재 마이너스 이자율을 기록 중이다. 이는 투자자들이 가까운 시기에 물가가 빠르게 오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시장의 장기적 인플레이션 전망은 여전히 안정적이다.

현재의 상황에 걸맞은 또 하나의 교훈은 물가 급등이 장기적 투자 계획을 취소해야 할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1940년대의 고도 인플레이션은 주간 고속도로망 건설처럼 미국의 미래를 위한 장엄한 서사시적 공공투자에 뒤이어 나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지출안도 단기 수요를 거의 확대하지 않은 채 장기 공급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1940년대의 대규모 공공투자와 흡사하다.

물가 동향 보고서의 내용이 달갑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 모두 앞으로 나올 보고서가 좀 더 개선된 내용을 담기를 원한다. 그러나 1970년대와의 억지 비교를 통해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성을 외치는 것은 역사의 번지수를 제대로 찾지 못한 결과다. 올바른 역사적 선례는 현재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공황 상태에 빠질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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