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망규명위가 밝힌 진실 "결정문을 보니 알겠더라"

신나리 입력 2021. 10. 1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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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3년 조사활동 보고회'.. 유가족 "군의 책임 있는 사과 필요"

[신나리 기자]

 최아무개 소위는 ROTC로 임관 후 전투병과학교에 입교한 지 한 달여, 유격 훈련에 참여한 지 6일만에 사망했다.
ⓒ 유가족 제공
 
"유격장에 도착한 첫날부터 이미 탈진상태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도 교관들에 의해 몸이 나무에 묶여있거나 목이 로프로 묶인 채 개처럼 질질 끌려다녔고, 선녀탕이라는 오물통에 빠뜨려지는 등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함"

지난 6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아래 위원회)의 결정문을 받아 든 최아무개(63)씨는 한참을 소리 내 울었다. 동생인 고 최아무개(당시 23세) 소위가 받은 군대 내 가혹행위는 최씨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당시 그는 학생군사교육단(ROTC)으로 소위 임관 후 전투병과학교에 입교한 지 한 달여, 유격 훈련에 참여한 지 6일 만인 1984년 4월 7일 사망했다. 

14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유가족 최아무개씨는 "유격 훈련을 시작한 지 6일 만에 동생이 죽었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위원회의 결정문을 보니 알겠더라. 죽어라 하고 패는데 이걸 견딜 사람이 어디 있었겠느냐"라며 울먹였다. 

출범 3주년을 맞이한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아래 위원회)가 이날 서울 포스트타워에서 '3년 조사활동보고회'를 열고 최 소위를 비롯해 진상규명이 이뤄진 사례들을 발표했다. 당초 위원회는 지난달까지 3년간 한시적으로 운영될 예정이었지만, 올 4월 특별법이 개정돼 활동시한이 오는 2023년까지로 연장됐다. 

최 소위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는 그의 동기가 위원회에 진정 접수를 하며 시작됐다. 당시 군은 '최 소위가 54km 행군과 주간체력 단력, 야간 담력훈련 등을 마치고 과로로 쓰러져 후송 도중 사망했다'고 밝혔다. 시체검안서에는 '청장년 급사증후군'이 쓰여 있었다. 이는 20~30대가량의 청장년 남성이 수면 중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상황에서 부검 상 특이 소견이 없을 때 해당하는 사인이다.

위원회는 함께 훈련을 받는 등 당시 상황을 뚜렷이 기억한 동기 40여 명에게 최 소위가 극심한 얼차려를 받고 유격 훈련 첫날부터 탈진 상태였다는 점을 확인했다. 최 소위가 쓰러진 후에도 즉각적인 후송이 이루어지지 않고 방치됐다는 점도 밝혀냈다. 

이어 당시 군의관, 헌병대 수사관 등의 진술과 당시 관련 자료를 토대로 의학 자문을 한 결과 최 소위의 사망원인은 '심각한 탈수와 그로 인한 전해질 불균형, 영양 결핍, 전신 폭행에 의한 손상 등으로 인한 쇼크 또는 이러한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유인으로 작용했다'고 결론 냈다. 

위원회 "863건 종결, 923건 조사 진행 중"
 
 출범 3주년을 맞이한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14일 서울 포스트타워에서 '3년 조사활동보고회'를 열었다.
ⓒ 신나리
 
이날 위원회는 지난 3년(2018년 9월 14일 ~ 2020년 9월 14일) 간 총 1787건의 진정을 접수했고 9월 말 기준 863건을 종결했다고 밝혔다. 이어 "'진상규명'으로 의결한 452건 가운데 진정 접수 전 '순직'으로 결정된 88건을 제외한 366건에 대해 국방부·경찰청·법무부 등에 사망 구분 변경 재심사를 권고했다"며 "그 결과, 현재까지 재심의가 종결된 231건 중에서 218건(94.7%)이 인용돼 위원회의 심의가 진정인의 명예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라고 자평했다.

위원회는 진상규명 사례 중 ▲ 목격자 증언으로 실체적 진실이 발견된 사례 ▲ 전사 사례 ▲ 96~97 병·변사자 일괄순직 시 누락된 사례 ▲ 사망보상금 지급을 권고한 사례 ▲ 전역 후 사망한 경우 순직제도 개선을 권고한 사례 ▲ 구타·가혹행위의 정도가 심각한 사례 중 일부를 발표했다. 

1958년 '급성 화농성 뇌척수막염'으로 숨진 한아무개 이병의 경우 당초 전사망 구분이 '변사'로 기재돼 있었으나, "군 복무와의 관련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학적 소견을 근거로 한 위원회 권고에 따라 '순직'으로 변경됐다.

공아무개 일병은 1980년 '태권도 교육 중 실책'으로 사망한 게 아니라 '선임병의 폭행' 때문이라는 점도 밝혀냈다. 위원회는 간호기록, 병상일지, 자필 진술서 조작이 있었다는 참고인 진술을 토대로 당시 헌병대(군사경찰)의 사건 은폐 정황 등을 확인했다. 

이어 6·25전쟁 중이던 1950년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유아무개 이등중사 소속 부대의 전투 기록, 거주표 등을 따져본 뒤 국방부 장관에게 사망 구분을 '전사'로 재심사해달라고 요청했다. 

비상임위원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자살자의 심리행동 변화를 확인해 자살 원인을 검증하는 '심리부검'을 적용했다. 이 교수는 1979년 이아무개 일병이 자해사망한 이유를 군대 내 가혹행위, 병력 관리 소홀에서 찾기도 했다. 이 교수는 "심리부검은 기록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당시에 부실해서 무시된 기록, 유서나 메모, 구타 가혹행위의 경우 그 과정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현재 잔여 사건 924건 가운데 소송 진행으로 조사 개시가 유보된 1건을 제외한 923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송기춘 위원장은 "위원회는 사망사건 조사기구이자 군의 신뢰와 명예회복을 위한 기구"라면서 "군이 정말 명예로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런 조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특히 군사망사고와 관련해 자해사망 군인에 대한 차별 없는 예우, 정신질환 전역자 지원 등 제도개선을 함께 추진해야 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유가족 "군은 왜 사과하지 않나"

위원회의 진상규명과 별개로 유가족들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특히 이들은 진실이 밝혀진 후에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1979년 무장 구보 훈련을 마치고 부대 내 화장실에서 자해사망한 이 일병의 유가족은 "동생의 사망 후 가족들이 울화병, 사고로 사망했다"라면서 "그런데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 이게 말이나 되나. 진실이 완성되려면 가해자도 벌을 받아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최 소위의 유가족 최아무개씨 역시 "동생이 사망했지만, 가해자 중 처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위원회의 결정문을 보니) 가해자 중 일부는 표창을 받는 등 군대에서 승승장구해 별까지 달았다"라면서 "군도 마찬가지다. 군대 내 발생한 사고를 은폐했고 37년 만에 진실이 밝혀졌는데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결국 동생의 ROTC 동기들과 오는 21일 서울 국립 현충원 동생 모역에서 진혼제를 할 생각이다. 이렇게라도 동생의 넋을 달래고 싶다"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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