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출금은 무소불위 권력남용, 20년 검사생활 중 가장 센 압력”

양은경 사회부 차장 입력 2021. 7. 19. 03:04 수정 2023. 12. 14. 16:3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양은경이 만난 사람] ‘김학의 불법출금’ 공익신고한 뒤 좌천된 장준희 부장검사
'김학의 불법출금' 공익신고인 장준희 부장검사가 본지 인터뷰를 통해 최초로 신분을 공개했다. 2019년 당시 안양지청 부장검사로서 '불법출금'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하겠다고 했다. 청와대와 법무부, 검찰 핵심 인사들이 기소됐지만, '불법출금' 에 대해 사과한 사람은 없었다./이태경 기자

현직 고검장과 청와대 민정비서관, 법무부 본부장 등이 기소된 ‘김학의 불법출금 및 수사무마’ 사건은 지난 1월 4일 국민권익위원회가 접수한 106쪽짜리 공익신고서에서 출발했다. 신고서를 작성한 공익신고인은 당시 의정부지검 장준희(51) 부장검사(현 인천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였다.

장 부장검사는 앞서 2019년 6월 이성윤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 안양지청의 ‘김학의 전 차관 불법출금’ 수사를 무산시킬 때 그 사건의 담당 부장검사였다. 그는 지난 15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제 내 신원을 공개해도 좋다”며 “(2019년 안양지청의) 주임검사는 ‘김학의 불법출금’을 수사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가 교체됐는데 담당 부장인 나는 외압에 굴복해 실체를 밝히지 못했다. 나에게도 책임이 있었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고위직 여러 명이 기소됐지만 그 누구도 사과를 안 했다”고도 했다.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은 청와대 이광철 민정비서관,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장,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 등이 ‘가짜 출금요청서’로 2019년 3월 김학의 전 차관을 불법출금하고, 석 달 뒤 이성윤 당시 대검 반부패 부장이 이를 수사하려던 안양지청에 외압을 가해 중단시켰다는 내용이다. 현직 부장검사의 ‘공익 신고’로 검찰이 ‘내부 비위 의혹’ 수사를 진행하고, 청와대·검찰·법무부 실세(實勢)들의 기소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전례가 없다. 적법 절차 원칙의 예외 없는 적용을 확인한 ‘한국판 미란다 사건’이란 평가도 있다.

◇수사 끝까지 못해, 사과하려 신분 공개

-본인 신분을 공개한 이유는.

“2019년 안양지청에서 불법출금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 겸 공익신고자로서,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익명으로 공익 신고를 한 것은 신원을 드러내면 신고의 진정성을 오해받을 우려가 있어서였다. 이제는 수사도 거의 끝났기 때문에 수사 중단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차원에서 신원을 밝힌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가.

“끝까지 불법출금을 수사하겠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은 윤원일 검사도 있었다. 한 명의 검사로서 저는 그런 역할을 충실히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명의 고위직이 기소됐지만 그 누구도 사과를 안 했다.”

‘김학의 불법 출금’ 공익신고인인 인천지검 장준희 부장검사가 본지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신분을 공개했다. 이 사건으로 핵심 인사 네 명이 기소됐지만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 가운데 2019년 당시 안양지청 부장검사로서 ‘불법 출금’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데 대해 책임지고 사과하겠다고 나섰다. /이태경 기자

-윤 검사가 2019년 4월 불법출금 정황을 보고했을 때 상황은.

“저뿐 아니고 여러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현직 검사가 설마 이렇게 했을까, 단순 실수가 아닐까. 혐의를 더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출금 서류를 다시 확인하는 것은 물론 출입국 공무원들 소환 조사도 했다. 그 결과 혐의가 확실하고, 수사 착수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왜 수사를 계속하지 않았나

“2019년 6월 19일 대검 반부패부에 보고한 후 이현철 안양지청장(현 서울북부지검 중경단 부장검사)과 배용원 차장(현 서울북부지검장)의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회의 때 지청장·차장이 ‘이규원 검사가 혼자 책임을 지는 건 가혹하다. 당시 법무부와 대검이 협의해서 한 일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결하자고 했다. 검사 생활 20년 했지만 이렇게 센 압력이 느껴지기는 처음이었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에 따르면, 이 고검장은 동향인 배용원 안양지청 차장에게 “긴급출금은 법무부, 대검이 협의해서 한 일”이라고, 김형근 수사지휘과장은 대학선배인 이현철 안양지청장에게 “(불법출금은) 보고받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이후 6일 뒤 주임검사가 당신으로 교체됐는데 왜 수사를 안 했나.

“그 부분은 사과하고, 책임질 것 있으면 책임지겠다. 더 강하게 밀고 나가지 못한 것은 제 잘못이다. 회피할 생각 없다. 다만 이번 불법출금 수사에서 보듯, 거악(巨惡)을 상대하는 범죄는 수사검사와 지휘 라인, 대검이 하나가 돼야 한다. 내부가 분열되면 수사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수사 중단의 책임을 사과하는 부분에서 그의 말투가 느려졌다. ‘수사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후배 윤원일 검사를 언급하면서 목소리가 약간 잠기기도 했다.

◇적법절차에 예외 없어, 초등학생도 알아

-수사 중단 후 15개월이 지나 공익 신고를 했다.

“그해 8월에 서울동부지검으로 전보됐다. 이 일을 끝내 묻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동부지검 검사로 잘나가는데 (문제 제기하면) 불이익을 받을 게 뻔했다. 그런데 김 전 차관이 2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고 법정 구속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그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제대로 실상을 알렸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금 당시 피의 사실도 없었는데 청와대 민정수석실, 법무부가 감금 비슷한 불법출금을 한 것은 무소불위의 권력 남용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들이 공익 신고에 반대하지 않았나

“아내가 많이 반대했다. ‘그래도 김학의는 나쁜 사람인데 당신이 왜 그 사람을 두둔하는 듯한 신고를 하느냐’고 했다. 그렇지만 사건을 묻는 것보다 내가 책임지고 신고하는 게 유사 사례를 방지하고 아이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해 권익위 홈페이지 ‘신고’ 버튼을 눌렀다. 한참 후에 (외압 피해자로) 조사를 받은 윤 검사 전화가 와 ‘사실 그대로 얘기했다. 부장님이 어려운 결심 하신 거 저도 지지하고 응원한다’고 하더라”

장 부장검사는 “김학의 전 차관의 법정구속 이후 공익신고를 결심했다”고 했다. 사진은 뇌물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김 전 차관이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 환송에 따라 지난 6월 보석으로 석방되는 모습. /이태경 기자

-박범계 장관처럼 ‘김학의 사건’에 ‘절차적 정의’ 적용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시각도 있다.

“법치주의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아무리 흉악범이더라도 그 사람을 단죄하는 과정에서 적법 절차 원칙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적법 절차 원칙은 사건에 따라, 피의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원칙이 절대 아니다. 이건 초등학생도 답할 수 있는 문제다. 국민이 다 알고 있는데 일부 정치인들만 애써 부인하고 있다. 국민적 공분이 있는 사건이라면 더더욱 수사 과정에서 적법 절차를 지키는 것이 민주국가이고 법치국가다.”

이날 인터뷰는 오후 4시부터 90분에 걸쳐 인천의 한 식당에서 이뤄졌다. 장 부장검사가 최근 인사를 통해 의정부지검에서 인천지검의 한직으로 발령났기 때문이다. 그는 검찰 내부 규정에 따라 상부에 인터뷰 사실을 사전 보고한 뒤 외출 신고를 하고 기자를 만났다. 자신의 ‘좌천 인사'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러웠으나, 법무부가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 수사를 ‘피의사실 유출’의 사례 중 하나로 몰고 간 부분에 대해선 목소리가 커졌다.

-최근 본인 인사가 부당하다는 공익 신고도 했는데.

“불이익을 각오한 것은 맞는다. 그렇지만 저와 비슷한 처지 혹은 저보다 심한 불이익을 받고 있는 다른 공익 신고자들 때문에 나섰다. 공익 신고를 이유로 받은 불이익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익 신고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부정부패를 적극적으로 신고할 수 있게 된다.”

-이성윤 고검장, 이규원 검사 등 피고인들은 영전과 배려를 받았다.

“내로남불, 편 가르기 문제라 생각한다. 누구든 업무 수행 과정에서 불법이 있었다면 감찰을 하고 징계 혹은 처벌을 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불순한 의도에 의한 신고’ 또는 ‘검찰 개혁에 저항하는 일부 검사들의 과도한 수사’로 규정하고 오히려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을 승진시킨 것은 정말 안 좋은 선례다.”

◇'한명숙' 발표에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박범계 법무장관이 ‘김학의 불법출금 사건’을 ‘여론 몰이식 악의적 수사 정보 유출’의 사례로 거론했다.

“언론을 무시하는 태도다. 마치 언론이 불러주는 대로 그대로 쓰는 것처럼…. 이는 오만한 편견이다. 고위 공직자의 직무 범죄는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하는 영역이다. 힘없는 서민들의 사적 영역에서 발생한 범죄와 다르다. 권력 비리에서 ‘피의 사실 공표’ 잣대를 엄격히 들이대면 진실은 가려지고, 신고자는 다치고, 수사한 검사는 좌천된다.

-법무부는 한명숙 전 총리 수사 과정을 감찰 한 뒤 ‘절차적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발표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사법 정의와 형평성, 평등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 난 사안이고 본인도 재심 등으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명숙 명예 회복용 감찰’이라는 의도를 국민들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공익 신고 결과로 수원지검은 4명을 기소했다. 소감은.

“저도 외압을 경험한 검사로서, 이번 수원지검 수사는 여당이나 법무부로부터 굉장한 압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공공연하게 좌천 인사 얘기가 나왔고 실제로 좌천되지 않았나. 그런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인사 전날 기소를 하고 떠난 수원지검 수사팀과 수원고·지검 지휘부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이던 이광철이 이 사건의 몸통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그 윗선인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의 개입 의혹에 대한 명확한 해명이 필요하다.”

-후회하는 점은 없나.

“불법을 묵인하는 대가로 승진이나 재물을 취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얻은 관직이나 재물은 훗날 본인이 희생한 정의와 진실과 비교할 때 굉장히 하찮을 것이다. 지금 상황이 어려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도 있다.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다시 공익 신고를 할 거다. 검사인 나에게도 그런 용기가 없다면 수많은 어려움을 뚫고 공익 신고를 해야 하는 일반 국민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해야 하고, 할 것이다.”

☞장준희는

1970년 경기 이천 출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31기로 수료했다. 2002년 판사로 임관했다 2년 만에 검사로 전관(轉官)해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서울중앙지검 등을 거쳤다. 법무심의관실에서 ‘공익신고자 보호법’ 입법에 관여했다. 안양지청에서 겪은 수사 중단 외압을 공익 신고했고, 올해 2월 의정부지검 부장검사에서 인천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으로 좌천됐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