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변이 또 생길것" 에이즈 환자 몰린 사하라 이남 비명

김홍범 입력 2021. 12. 3. 05:00 수정 2021. 12. 3.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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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환자 사이에서 통제 없이 번질 경우 지금보다 더 나쁜 신종 변이도 나올 수 있다. 세계 각국 정부와 보건 전문가들이 (아프리카의 상황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을 촉구한다.”

아프리카 중부 케냐 호마베이에 사는 한 에이즈 환자의 모습. 이 지역 내 에이즈 사망률은 큰 사회적 문제다. [AFP=뉴스1]

최근 코로나19 신종 변이 오미크론이 빠르게 확산 중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내 최고 보건권위자들의 말이다. 1일(현지시간) 툴리오 드 올리베이라 남아공 전염병 대응 및 혁신센터(CERI) 소장을 비롯한 남아공 과학자 4명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고글을 통해 세계 각국이 아프리카의 백신 부족 사태에 무심하게 대응할 경우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기고글에서 “우린 남아공 전역의 병원과 실험실에서 일하는 과학자들로, 코로나19가 우리나라에 가져온 재앙이 어떤 모습인지 직접 봤다”며 “추후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자가 많은 나라에 백신을 보급하지 못한다면 해당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더 위험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이가 만들어지는 시간을 촉진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에이즈 환자의 몸속에서 최장 수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델타 변이보다 더 위험한 변이 바이러스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9월 나이지리아 남부 에도주 주도 베닌시의 한 거리에 '백신 접종 증명서 없이는 출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AFP=뉴스1]


코로나 감염 에이즈 환자, 코로나19 변이 촉진해


오미크론 변이가 지난달 24일 남아공에서 처음 보고될 당시 일부 전문가들은 이 변이가 에이즈 환자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면역력이 떨어진 암환자로부터 변이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다만 미 중앙정보국(CIA)에 따르면 남아공 인구(약 6000만 명)의 약 20%가 에이즈에 걸렸을 정도로 환자 수가 많아 확률상 에이즈 환자 쪽에 무게가 간다.

프랑수아 발루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생물정보학 및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에이즈 환자에서 신종 변이가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면역력이 저하된 체내에서 바이러스가 오래 머물면서 항체를 피하는 쪽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샤론 피콕 케임브리지대 공중보건 및 미생물학과 교수도 “남아공의 상황은 오미크론 변이의 유전적 특성이 바이러스에 감염됐지만 제거할 수 없는 사람에게서 진화했을 수 있다는 가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주요 변이종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세계보건기구(WHO)]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최장 잠복기는 14일로 알려졌지만 평균적으로 4~5일 내로 증상이 발현되고, 수주 내로 바이러스가 사라진다. 그러나 에이즈 환자의 경우 약한 면역력 탓에 수주에서 몇 달까지도 바이러스가 생존할 수 있다. 올리베이라 소장 연구팀이 지난 6월 의학 논문 사전공개사이트 ‘메드아카이브’에 공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염 190일 이후까지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 샘플에선 다양한 코로나19 변이의 특성이 동시에 발견됐다.

에이즈 환자의 면역체계는 바이러스를 제거할 만큼 충분히 강하진 않지만, 바이러스의 진화를 촉진하는 ‘면역 압력’을 꾸준히 가하며 변이를 발생시킬 수 있다. 면역 압력은 인간의 면역계에 저항하기 위해 바이러스가 진화하도록 유도 받는 압력의 정도를 말한다.


세계 에이즈 환자 3분의 2, 사하라 이남에


문제는 치료법의 발전으로 에이즈는 관리만 잘하면 되는 병이 됐지만, 남아공 외에도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에선 여전히 만연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 멘토들이 말라위에서 HIV 감염 위험 교육 활동하고 있다. [사진제공=국경없는의사회]

유엔에이즈계획(UNAIDS)에 따르면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이른바 ‘블랙 아프리카’에 세계 에이즈 환자의 3분의 2가 살고 있다. 이 중 적절한 치료를 받고 있지 못하는 인구도 약 800만 명에 달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등 방역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언제 새 변이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다.


선진국 ‘백신 독점’ 비난…현지 인식과 보건 체계도 문제


이에 1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아프리카의) 낮은 백신 접종률과 저조한 검진율이라는 독성 혼합이 변이를 만든 ‘레시피’”라며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각국에 계속해서 촉구한다. 백신과 검진, 치료제의 균등한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고 선진국을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그는 과거 에티오피아 보건부 장관을 지냈다. [AP=연합뉴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금까지 12억 아프리카 인구의 약 7%만 코로나19 백신을 맞은 상황”이라며 “과학자들은 이런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달 29일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에 코로나19 백신 10억 회분을 공급하기로 했고, 이어 지난달 30일 인도 외무부도 성명을 통해 “오미크론 변이 대응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영향을 받는 국가들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며 백신 공급을 약속했다.

다만 부족한 백신 공급 문제와 함께 아프리카에 만연한 ‘백신 불신론’도 넘어야 하는 산이다.

코로나19 백신 공동 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에 따르면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국가들이 백신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7~8월 상황이 다소 개선됐다.

그러나 남아공의 비영리단체 코비드 콤스 설립자 크리스 빅은 아프리카 내 백신 운송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현재 백신을 공급하는 공중보건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남아공 가우텡주(州)에 사는 티디바트 소라카베라(20)는 “코로나가 가짜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말한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대 연구팀이 지난 6월 25일~7월 12일에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아공 18~24세 청년의 약 45%가 백신 접종을 주저한다고 답했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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