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전력수급 불안에 대한 근원적 대책이 필요하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1. 7. 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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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시 빛가람동 한국전력공사 본사 상황실에서 직원이 전력수급 현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기온이 무섭게 치솟고 있다. 섭씨 40도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의 4차 확산에 따른 초강력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친 국민들에게는 몹시 가혹한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전력 사정까지 불안하다. 최대 전력수요가 역대 최고인 94.4GW까지 치솟으면서 공급예비력이 전력수급 경보의 ‘관심’(블루)에 해당하는 4.0GW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산업부가 지난 1일 공식적으로 밝힌 전망에 따르면 그렇다. 행정안전부도 전국의 공공기관에 전력 피크 시간대의 에어컨 가동을 지역에 따라 순차적으로 정지하도록 통보했다. 

몹시 불안한 전력수급 상황

지난 1일 산업부의 전망은 크게 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년보다 일주일이나 먼저 폭염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지난 한 주 내내 공급예비력이 10GW를 밑돌았다. 최대 전력수요가 85.0~88.0GW까지 늘어난 탓이었다. 심지어 13일에는 공급예비력이 8.79GW(공급 예비율 10.1%)까지 줄어들었다. 공급 예비력이 경보의 ‘준비’ 단계인 5.5GW에 바짝 다가서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번 주의 사정도 절박하기는 마찬가지다. 화요일에도 전력수요가 86.5GW를 넘어섰다. 전력수급 경보까지 상당한 여유가 있다고 안심할 상황이 절대 아니다. 2011년 9월 15일 순환정전의 경험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순환정전 하루 전의 공급능력은 70.0GW였고, 예비력은 11.4GW였다. 예비율은 무려 19.4%나 됐다. 지금의 기준으로도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최대 전력소비가 갑자기 8.5GW나 늘어나면서 공급 예비력이 3.3GW(예비율 5.0%)로 곤두박질쳐버렸다. 대정전(블랙아웃)에 의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순환정전을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공급 예비력 10%가 넉넉하다는 일부 여당 의원과 언론의 지적은 그런 경험을 무시한 안이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년보다 일주일이나 먼저 폭염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지난 한 주 내내 공급예비력이 10GW를 밑돌았다. 전력거래소 제공

공급 예비력이 5.5GW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본격적인 전력수급경보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전력거래소의 ‘전력시장운영규칙’이다. 전력 당국은 수요를 줄이고, 공급을 늘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실제로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도록 요청하고, 발전설비의 정비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 전력수급대책 기구를 구성해서 긴급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수요가 늘어나거나, 공급이 줄어들어서 예비력이 더 줄어들면 관심(4.5GW)·주의(3.5GW)·경계(2.5GW)·심각(1.5GW)의 경보를 발령하고, 단계별로 ‘긴급절전’이나 ‘부하차단’과 같은 강제 조치도 시행해야 한다. 소비자에게 상당한 불편과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는 뜻이다.

  당장 발전설비가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가 전국에 건설해놓은 발전설비는 129.6GW에 이른다. 그런데 지난 13일에 실제 가동했던 발전설비는 고작 96.0GW에 지나지 않았다. 발전설비의 25.9%인 33.6GW의 발전설비가 정비 또는 고장으로 가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24기의 원전 중 8기가 정비를 핑계로 가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2011년 9월에는 놀고 있던 발전설비가 전체 78.8GW의 10.4%인 8.2GW에 지나지 않았었다. 

올여름의 전력수급 불안정이 ‘탈원전’ 때문이라는 지적은 당연한 것이다. 산업부가 강조하는 ‘에너지 전환정책’이 바로 탈원전이다. 2018년의 제8차와 2020년의 제9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전력소비 전망을 억지로 낮춰 잡았던 것도 탈원전 때문이었고, 발전설비의 25.9%를 세워놓은 것도 역시 탈원전 때문이다. 탈원전을 합법적으로 추진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월성 1호기의 조기 폐로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천하가 알고 있는 팩트다. 전직 장관과 관료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의 확대로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도 필요하다. 태양광 설비가 피크 전력수요를 줄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사량이 많아지면 태양광의 발전량도 늘어난다. 그런데 갑자기 소나기라도 쏟아지면 전력 수급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전력당국이 소규모 태양광 설비의 발전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매우 심각한 것이다. 신재생 설비의 규모가 늘어날수록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일상화된 기상이변

작년 8월 3일 오전 한강 수위 상승으로 침수돼 출입이 통제된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연합뉴스 제공

매년 기상이변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여름의 장마도 기록적이었다. 올해도 너무 일찍 시작했다고 법석을 떨었던 올 장마는 평년의 절반인 17일만에 끝나버렸다. 그리고 느닷없이 예년보다 1주일이나 앞당겨서 끔찍한 폭염이 덮쳐왔다. 그나마 월요일까지는 간간히 지나가는 소나기 덕을 보았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워질 모양이다. 창밖에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이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한반도에 발생한 ‘열돔’이 꼼짝도 하지 않고 정체되어 생기는 일이라고 한다.

물론 폭염을 처음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1994년과 2018년에도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었다. 폭염과 열대야 일수가 모두 평년의 3배에 가까운 역대급이었다. 1994년의 폭염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로 급격하게 확장되어서 생긴 일이었다. 다행히 8월 초에 찾아온 2개의 태풍이 폭염을 해결해주었다. 2018년의 폭염은 중국에 상륙한 2개의 태풍이 북태평양 고기압을 한반도 쪽으로 밀어붙이고, 고온다습한 수증기를 유입시켜서 상황을 더욱 힘들게 만들어버렸다. 기상학적 설명은 명쾌했지만 기상이변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우리만 기상이변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다. 일본은 이미 6월에 시작된 장마전선에 물 폭탄을 얻어맞았다. 예상치 못했던 폭우로 시작된 산사태로 적지 않은 인명·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중국의 북경과 사천에도 물 폭탄이 떨어졌다. 동아시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캐나다·인도·터키·독일·뉴질랜드가 모두 폭염과 집중호우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촌 전체가 기상이변에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요즘의 기상이변은 화석연료를 마구 사용한 우리가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에너지·자원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과연 우리가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를 돌이킬 수 있을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탄소중립을 달성하면 기상이변이 사라지고, 온난화가 멈춰질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날씨는 언제나 변화무쌍했고, 변덕스러웠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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