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맹수 치타까지 한입에 덥석..'진화하는 괴물' 악어

정지섭 기자 2021. 11. 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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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시대부터 생존한 악어, 2억년넘게 진화 거듭해
무자비한 턱힘의 필살기 '죽음의 회전' 으로 악명

오늘은 먼저 야생동물 사이트 Last Sightings에 올라온 동영상 한편을 보시죠.

폭발적인 스피드로 사바나를 호령하는 치타도 어쩔 수 없이 갈증을 달래기 위해 물을 마셔야 하는 동물입니다. 오늘은 이 치타에게 지독히도 운수가 나쁜 날이었습니다. 물을 마시면서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는 몸동작에 이미 비극의 전조가 서려있었습니다. 순식간이었습니다. 아가리를 벌리고 전광석화처럼 물속에서 튀어나온 나일악어에 목덜미를 잡힌 치타는 순식간에 처절하게 끌려들어갑니다. 악어는 육상동물 중 최고수준의 턱힘을 자랑합니다. 치타를 문 악어가 물속으로 들어간 자리에 치던 비극의 소용돌이는 잦아듭니다. 맹수의 몸은 물속에서 갈가리 찢어져 악어의 위장속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 순간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어미와 형제의 처연한 표정이 단 한순간의 정(情)도 허용하지 않는 대자연의 냉혹함을 말해줍니다. 냉혈동물 파충류의 최강자 악어의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동영상이었습니다.

케냐 마사이 마라 국립공원의 마라강에서 나일악어가 새끼 얼룩말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가련한 얼룩말이 악어의 아가리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제로이다. 악어는 얼룩말을 익사시킨 후 '죽음의 회전'을 통해 갈가리 찢어서 먹을 것이다. /Alamy

악어는 알려진대로 공룡이 지배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파충류입니다. 공룡이 사라지고, 수많은 동물들이 명멸하는 과정에서도 지금까지 예전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형태로 번성하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리죠. 그런데 이들을 ‘살아있는 화석’으로 부르는 것은 썩 괜찮은 아이디어는 아니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국 대중과학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최근 ‘현대의 악어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화중’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영국 유니버시티 컬리지 런던의 해부학자 라이언 펠리스와 동료들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습니다. 고대 선사시대 파충류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악어가 사실은 굉장히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연구진은 3차원 분석 기법을 통해서 현존하는 악어들의 두개골을 분석한 결과 이런 결론을 냈습니다. 지난 2억3500만년의 세월을 살아온 악어는 중단없이 진화를 거듭해왔다는 것. 그리고 그 진화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것입니다.

악어의 조상인 고대 파충류 슈도수치안의 일종을 사람 크기와 견준 모습. 현존하는 최대 악어인 호주 바다악어와 비슷하다. /미 국립공원관리청(NPS) 홈페이지

악어의 조상은 2억3500만년전에 출현한 고대 파충류인 슈도수치안(pseudosuchians)의 무리입니다. 그림에서 보여주듯 악어와 두발 달린 공룡을 반반쯤 섞어놓은 모습입니다. 당시는 대표적인 ‘공룡시대’인 트라이아스기였죠. 슈도수치안에 속하는 파충류들은 이후 진화와 변모를 거듭했고, 백악기인 9500만년전 이후부터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악어중에 가장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가비알. 인도와 동남아 일부 지역에 살고 있다. /미 스미스소니언 동물원 홈페이지

악어족은 크게 네 부류입니다. 덩치와 흉포함으로 양강인 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가 있고, 각각 남미·남아시아 특산종인 카이만과 가비알이 있습니다. 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를 보통 ‘나일악어’와 ‘미시시피악어’로 부르지요. 이 때문에 크로커다일은 아프리카에만 살고 앨리게이터는 미주대륙에만 산다는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앙아메리카 일대도 크로커다일이 살고, 아시아에는 앨리게이터(중국 양쯔강악어)와 크로커다일(샴 악어)가 모두 살거든요. 크로커다일과 앨리게이터는 그래서 통상 입 모양으로 구분합니다. 위에서 봤을 때 둥근 U자형 머리에 입을 다물었을 때 이빨이 보이지 않으면 앨리게이터, 뾰족한 V 자형 머리에 이빨이 우툴두툴하게 튀어나왔으면 크로커다일로 구분합니다. 분류학적으로 앨리게이터의 무리에 속하는 카이만은 다른 악어들보다 위로 쳐든 머리와 상대적으로 짧은 몸길이, 가비알은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생긴 얇은 주둥이가 특징입니다.

악어의 사냥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필살기인 죽음의 회전(Death Roll)입니다. 추억의 전자오락실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의 브라질 캐릭터 블랑카의 공포의 회전 롤 킥을 떠올리실 분들도 있을텐데 전혀 다른 기술입니다. 엄청난 턱힘으로 익사시킨 거대한 먹잇감을 먹기 좋게 썰기 위해 살점을 물고 온몸을 빙글빙글 돌려서 북북 찢어내는 것이지요. 간혹 먹잇감이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에서 데스롤 공격이 진행되기도 하는데, 야생이 아무리 잔인하다 한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무시무시한 턱힘을 자랑하기 때문에, 단단한 먹잇감을 바로 아래위턱 사이에서 으깨버리기도 합니다. 데스롤이 나일악어나 호주 바다악어 등 크로커다일에게서 자주 볼 수 있다면, 거북 등껍질 깨먹기는 주로 앨리게이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주변 환경에 적응하면서 몸집과 생김새는 제각각이지만, 어떤 악어든 타고난 사냥꾼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시대에 맞게 몸을 진화하고 있으며, 그 진화에 가속도가 붙었다는 것이지요. 지금도 말이죠. 한반도 생태계가 축복받은 것 중의 하나는 어쩌면 악어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후 온난화로 한반도가 아열대에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어쩌면 언젠가 악어가 우리나라의 하천 어귀에 모습을 드러내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상상을 막연히 해봅니다.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비교적 멀지 않은 양쯔강 유역에도 앨리게이터가 서식한 것을 보면, 어쩌면 완전히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만 국내 대표적인 파충류 연구자는 “악어는 기본적으로 적도를 중심으로 서식지가 분포돼있는데, 우리나라의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반도에 악어가 출몰할 가능성은 지극히 낫다고 본다”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겨울이 앞으로 지금처럼 유지되느냐에 따라 악어의 출몰 여부가 달려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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