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유학 학생들 "여름방학 했지만 서울 집에 안 가요"

안관옥 입력 2021. 7. 26. 05:06 수정 2021. 7. 2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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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숲, 밤에는 별을 만나요. 책 읽는 시간도 더 늘었고요."

오산초등학교 곽찬훈(12·6학년)군이 서울보다 곡성이 좋은 이유를 하나하나 꼽았다.

지난 3월 이들 5명이 서울에서 전학을 오면서 오산초등학교 학생 수는 13명에서 18명으로 늘었다.

전남도교육청이 추진 중인 서울 학생의 농산어촌 유학 사업은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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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제공 숙소에서 함께 생활
"학교 돌봄학습 하고 자연 만끽
책 읽는 시간도 더 늘었고요"
전남도교육청 '농산어촌 유학'
"코로나 위기 속 대안 떠올라"
BBC·아사히신문 잇따라 소개도
곡성 오산초등학교 곽찬훈군이 지난 6월 섬진강 제월섬에서 진행된 트리하우스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통나무를 함께 옮기고 있다. 곡성교육지원청 제공

“낮에는 숲, 밤에는 별을 만나요. 책 읽는 시간도 더 늘었고요.”

지난 23일 산으로 둘러싸인 전남 곡성군 오산면 봉동리 오지봉커뮤니티센터. 오산초등학교 곽찬훈(12·6학년)군이 서울보다 곡성이 좋은 이유를 하나하나 꼽았다. 여느 시골 소년처럼 순진무구하고 가무잡잡한 얼굴이었다. 곽군은 “한 반이 3명이라 수업마다 발표해야 한다. 방송댄스, 전자기타, 드론 조종 등 새로운 걸 많이 배운다”면서도 “벌레가 많아 성가실 때도 있다”고 생활을 소개했다.

곽군은 지난 3월 서울 문정초등학교에서 이곳으로 전학 왔다. 어머니와 동생 세음(8·2학년)양이 함께 주민등록을 옮겼다. 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서울에 남았다.

곽군 가족은 여기서 이서율(10)·도하(8)군 가족, 조정래(12)군 가족 등을 만났다. 이들은 마을이 제공한 숙소인 커뮤니티센터에 살면서 음식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 하며 한 가족처럼 지낸다.

지난 3월 이들 5명이 서울에서 전학을 오면서 오산초등학교 학생 수는 13명에서 18명으로 늘었다. 6학년이 3명이 되면서 5·6학년이 같은 교실에서 공부하던 복식수업이 사라졌다. 2학년 세음양과 도하군은 하루도 빠짐없이 등교하며 신기해했다. 지난해 서울에선 코로나19 탓에 5월에 겨우 입학한 뒤 예닐곱차례 대면과 비대면 수업을 반복하다 학년을 마쳤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난 5~6월 주말마다 섬진강 제월섬에서 열린 트리하우스 만들기에도 참가했다. 수해로 부러진 폐목으로 계단을 만들고 2m 높이에 나무 집을 지으면서 자연 속으로 한발 더 들어갔다. 아버지들도 무거운 나무를 나르고 공구로 벽체를 조립하는 등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오산초등학교 유학생 5명이 함께 쓰는 오지봉커뮤니티센터 공부방. 안관옥 기자

주민들은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줬다. 길 가는 이들을 불러 강둑에 매어놓은 소들을 쓰다듬어보게 해주고 토란이나 땅콩의 이름을 알려줬다. 때론 감자와 옥수수 등을 한아름 안겨 보내기도 했다. 서남원 곡성교육지원청 장학사는 “지역을 살리고 학교를 살리는 것이 이름만 다를 뿐 내용은 같다는 인식이 확산했다”고 전했다.

이런 보살핌 덕에 이들은 여름방학에도 서울 집으로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매일 돌봄 수업을 제공하고, 코로나 걱정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2학기에도 ‘유학’을 연장하기로 했다.

서율군의 어머니 서지연(39)씨는 “부산·강릉·서울에서 옮겨 살아 지역 연고가 없어 걱정했었다. 하지만 사람도, 통신도, 택배도 문제없다”고 웃었다. 아예 정착하기로 결정한 가족도 있다. 찬훈군의 어머니 문혜현(39)씨는 “이곳에 와서야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운다’는 말의 뜻을 제대로 알았다. 아예 정착할 작정이다”라고 말했다.

전남도교육청이 추진 중인 서울 학생의 농산어촌 유학 사업은 자리를 잡았다. 지난 1학기엔 82명의 초등 4~중학 2학년 학생이 참여했다. 이 중 73.2%인 60명이 돌아가지 않고 2학기에도 남기로 했다. 또 2학기를 앞두고 8일 끝난 1차 모집에 134명이 신청했고, 8월5~11일 2차 모집을 앞두고 문의가 이어진다.

유학생과 가족의 높은 호응도에 외신도 관심을 보였다. 영국 <비비시>(BBC)는 지난달 21일 월드뉴스에 ‘서울 학생들 농촌으로 향하다’라는 제목으로 순천 월등초등학교 사례를 보도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12일 활력을 되찾은 화순 이서분교장을 소개하기도 했다.

장석웅 전남도교육감은 “코로나19 위기가 깊어지면서 농산어촌 유학이 생태·환경 교육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기후위기 세대들이 도시 밖 생활을 알 수 있도록 모집 대상도 경기·인천·광주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곡성 오산초등학교 학생 가족들이 지난 6월 섬진강 제월섬에서 진행된 트리하우스 만들기 프로그램에서 나무를 옮기고 있다. 곡성교육지원청 제공
곡성 오산초등학교 이서율(10)·도하(8)군 등이 23일 오지봉커뮤니티센터 야외 수영장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안관옥 기자
비비시 월드뉴스에 소개된 순천 월등초등학교 윤시후군. <비비시>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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