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미라클'서 소외된 아프간 협력자의 호소 "연락 준다더니 떠나, 두렵다"

최훈민 기자 2021. 8. 2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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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수도 카불 공항 주변에 모인 현지인들. /연합뉴스

“저희는 ‘연락 주겠다’는 한국 대사관 말만 믿고 생명의 위협 속에 무려 20일을 기다렸습니다. 분명하게 거절이라도 해줬으면 걸어서라도 국경 넘어 파키스탄으로 갔을 텐데… 게다가 한국 정부 돈을 받고 일한 우리 명단이 탈레반 점령지에 남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나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남겨진 A씨가 26일 밤 조선닷컴과의 전화 연결에서 이 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 외교부 산하 기관인 KOICA(한국국제협력단)이 설립한 카불 한국직업훈련원과 근로 계약을 맺고 십수년째 근무해왔다. 하지만 A씨와 그 가족은 아직 카불을 떠나지 못했다.

한국 정부는 작전명 ‘미라클’에 대해 ‘현지 조력자 가운데 스스로 잔류를 희망한 사람 등 36명을 빼고는 모두 데려왔다’는 취지로 언론 인터뷰 등에서 설명해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간접고용해온 현지인 60여명이 구출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과 그 동맹국을 도운 현지인들이 탈레반에게 살해되는 일이 거의 매일 벌어지고 있다.

◇직접 고용 아니란 이유로 작전서 소외된 사람들

한국 정부를 도운 아프간 현지인과 그 가족 378명을 군 수송기 3대를 동원해 한국에 데려온 ‘미라클‘ 작전의 구출 대상은 아프간 현지 우리 대사관과 KOICA, 바그람 한국병원, 바그람 한국직업훈련원, 차리카 한국 지방재건팀(PRT) 등지에서 근무했던 현지인이었다. 한국 정부·기관에 ‘직고용된 현지인’에게만 기적이 허락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2003년 설립해 KOICA가 운영해오다가, 2007년 아프간 정부에 운영권을 넘긴 카불 한국직업훈련원 직원 60여명이 제외됐다고 27일 정부 고위 관계자가 확인했다. 가족까지 합하면 약 250명이다.

카불 훈련원은 형식적인 운영권자가 아프간 정부일 뿐, KOICA가 운영비를 지원하고, 회계 보고를 받으며 감사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사실상 직고용과 다를 바 없는 셈이다. 여권 관계자는 “외교부에 물었더니 ‘카불 한국직업훈련원은 한국 정부랑 계약한 게 아니기 때문에 구출 대상에서 배제했다’는 취지로 설명하더라”고 말했다.

◇희망고문 20일, 그리고 남겨둔채 떠났다

A씨는 “우리는 이달 5일부터 주아프간한국대사에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수없이 걸었다”며 “수십 차례 전화 뒤 간신히 연결이 되자 대사관 직원은 ‘이메일로 요청 사항을 보내라’고 했고, 즉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A씨가 공개한 이메일에는 ‘아프간의 정치적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은 미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협력한 난민의 안전을 위해 난민 수용 프로그램(Refugee Admission Program)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국은 한국 정부에 직간접적으로 협력한 난민 관련 구호책이 있나 알고 싶다. 저희를 만나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적혔다.

A씨는 “답장을 받는 데 8일 걸렸다. 답장엔 ‘근로자 명단을 보내 주면 추후에 연락하겠다’는 짧은 내용만 담겼다”며 “서둘러 명단을 보냈고, 그게 끝이었다. 25일 우리를 남겨둔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카불 한국직업훈련원 직원들은 생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현재 탈레반이 이전 정부 조력자 색출에 나섰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미 언론이 공개한 UN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간 재점령에 앞서 체포 대상자 분류 작업을 마쳤고 이 리스트를 가지고 해당자를 체포하기 위해 민간인을 상대로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다른 훈련원 근무자 B씨는 “탈레반이 훈련원을 급습, 총을 수십 방 쏘고 갔다. 우리는 도망가느라 내부 문서 등을 파기할 시간이 없었다”며 “거기엔 한국 정부에 협력한 우리 훈련원 직원 명단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두렵다.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B씨는 “만약 대사관에서 우리를 구출해 줄 수 없다고 미리 말했더라면 걸어서라도 여기 보다 안전한 파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으로 갔을 거다. 우린 한국 정부를 믿었기에 기다렸는데, 결과가 지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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