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 몰카가 잘나가"

최미랑 기자 2017. 4. 1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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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종로 세운상가·용산 전자상가 판매점 가보니

최근 전자상가 등에서 주로 팔리고 있는 ‘자동차 키형’(위), ‘이동식저장장치(USB)·만년필형’(가운데), ‘안경형’ 몰래카메라. 최미랑 기자

“요즘 제일 잘 나가는 건 자동차 키(열쇠) 모양이에요. 4시간까지 촬영이 가능하고 보조배터리를 쓰면 더 오래 찍을 수도 있어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의 한 폐쇄회로(CC)TV 전문점에서 몰래카메라(몰카)를 찾자 직원은 왜 필요로 하는지 등은 전혀 묻지도 않고 곧바로 제품을 추천해줬다. 10만원대의 이 상품은 모양은 자동차 리모컨키 같은데 테두리 윗면에 렌즈가 달려 있다.

몰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31일 걸그룹 ‘여자친구’의 팬사인회에서 이 그룹 멤버 예린이 자신을 ‘안경 캠코더’로 찍는 남성을 찾아내 인권침해 논란이 벌어졌다. 또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한 방송 음식점 고발 프로그램의 ‘몰래 촬영’이 도마에 올랐다. 유명 체인점 아르바이트생이라고 밝힌 한 트위터 사용자가 “(음식점 고발 프로그램 관계자가) 우리 가게에 ‘몰카 안경’을 끼고 찾아온 듯하다”라는 글을 썼고, 한 맛 칼럼니스트는 페이스북에 음식점 주인들에게 조심하라며 ‘몰카 안경’의 특징을 자세히 소개하기도 했다.

몰카는 상대방 몰래 영상을 찍는 행위를 뜻하지만 최근에는 이 일에 사용되는 도구 자체도 몰카라 불린다. ‘초소형 위장 카메라’ ‘파파라치 카메라’ 등이 몰카의 다른 이름이다. 판매 현황을 알아보기 위해 지난 7일 서울 종로 세운상가와 용산 전자상가를 방문했다.

용산의 모 전자제품점에서 제품 소개를 부탁하자 다양한 물건이 쏟아져나왔다. 이동식저장장치(USB)형부터 안경, 넥타이, 단추, 만년필, 보조배터리, 라이터, 모자형까지…. “제가 보기엔 이 제품이 최고예요.” 업체 사장은 20만원대의 카드식 캠코더를 추천했다. 신용카드보다 약간 두꺼운데 렌즈 구멍이 뚫린 명함지갑에 넣어서 사용할 수 있는 몰카다. “HD(고화질) 영상으로 촬영이 되는 데다 휴대전화 케이스에도 숨겨 넣을 수 있거든요.”

직원은 카메라를 어디에 쓸지는 묻지 않았다. 몰카 판매 시 사용처를 묻는 것은 ‘금기사항’이라고 한다. 어떻게 쓸지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먼저 명함지갑을 열어서 명함을 하나 건네요, 그럼 상대방은 의심하지 않을 겁니다.”

온라인에서도 온갖 종류의 초소형 카메라를 살 수 있다. 액자, 화재경보기, 벽 스위치 등으로 위장해 실내에 부착하는 제품도 있고, 담배케이스, 블루투스 이어폰 등 휴대용도 나온다. 가격은 대개 40만원을 넘지 않고, 구입할 때 제약도 주의사항도 따라붙지 않는다.

세운상가 CCTV 전문점에서 몰카를 잡아낼 방법이 있는지 문의하자 직원은 “방법이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영상을 실시간 전송하는 송·수신기가 달려 있으면 모를까, 상대방이 지금 나를 찍고 있는지 그 자리에서 알 방법은 없다는 뜻이었다.

누구나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초소형 카메라가 성범죄 등 각종 범죄의 수단이 되자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금은 판매와 구입에 아무런 규제가 없다. 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인 ‘DSO’는 정치 스타트업 ‘와글’이 만든 입법 청원 플랫폼 ‘국회톡톡’ 사이트에 지난 7일 ‘몰카 판매 금지법안’ 제안서를 올렸다. DSO는 “온라인에 끊임없이 샤워실, 화장실, 성행위, 성관계 등 디지털성폭력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며 “초소형 카메라 구입에 대한 전문가제도를 만들어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초소형 카메라를 소지하는 것을 불법으로 하는 법안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10일 오후 현재 1만2000여명이 이 제안에 참여했다.

2015년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이 초소형 카메라 판매를 허가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성범죄 피해자를 주로 대리하는 임주환 변호사는 “기술발전의 속도 등을 감안하면 구입과 판매의 규제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는 재범률이 높기 때문에 법원이 무거운 판결을 내려 범죄 발생을 막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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