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대화' 기록..가장 큰 영향 준 분 이해하고 싶었죠"

입력 2018. 5. 22. 18:36 수정 2018. 5.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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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짬】응용언어학자 김성우 박사

김성우 박사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먼저 어머니의 반응이 궁금했다. 지난 5년 아들과 나눈 대화가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니! “어머니에게 책을 드리고 지하철역에서 헤어졌어요. 4시간 만에 전화를 하셨어요. 지하철역에서 책을 다 읽으셨더라고요. 너랑 나눈 대화를 기록한 걸 몰랐고, 이렇게 책이 된 게 너무 놀랍다고 하셨죠.”

최근 에세이집 <어머니와-나>(쇤하이트)를 펴낸 응용언어학자 김성우 박사의 얘기다. 그를 지난 1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저자는 3형제의 맏이다. 교육행정직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그가 대학 1학년이던 1992년에 돌아가셨다. 당시 어머니는 만 37살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집안을 꾸리기 위해 청소일도 하고 동대문에서 옷을 떼어와 동네 쇼핑센터에서 팔기도 했어요.” 그는 서울대 영어교육과에서 석사까지 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응용언어학을 공부해 박사를 받았다. 둘째는 은행원이고 막내는 변호사다. 장남인 그가 4년 전 결혼하면서 세 아들 모두 가정을 꾸렸다.

그는 2012년 박사를 마치고 귀국한 뒤 결혼할 때까지 어머니와 둘이 살았다. 이때 ‘어머니와의 대화’가 시작됐다. “어머니랑 자녀교육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어요. 제가 어머니에게 어떤 부모가 아이들을 잘 키우느냐고 물었어요. 어머니가 ‘자기가 아이한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지’라고 하시더군요. 이 말이 인상적이어서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더군요.”

그 뒤로 자식의 마음을 움직인 어머니 말을 옮겨 페북 친구들과 공유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묘비명을 아들에게 이렇게 불러주었단다. ‘큰아들은 나를 기쁘게 했고, 둘째 아들은 나를 든든하게 했고, 막내아들은 나를 즐겁게 했다.’ 여기에 아들은 자신의 생각을 달았다. “어머니는 정말 끝까지 ‘나는 다른 이들에게 이러이러한 사람이었다’가 아니라, ‘누구누구는 나에게 이런 존재였다’로 남고 싶으신 걸까.”

올해 6년차 비정규직인 아들에게 건네는 따스한 충고는 비슷한 온기의 답과 만난다. “지금 먹고사는 것만도 감사하지. 물론 네가 정규직이 되면 좋겠지만, 지금 고생하는 거 잊지 말아라. 잊으면 고생한 게 의미가 없잖아.”(어머니) “고마워요. 고생이랄 것도 없지만 잊지 않겠습니다.”(아들)

어머니는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살고 싶으냐는 아들의 물음에 바로 여자라고 답한다. “다시 태어나면 너희들 셋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엄마가 보고 배운 게 적어서 더 크게 못 키운 거 같아.”

유학 뒤 어머니와 살며 대화
‘인상적인 말’ 온라인서 공유
최근 글 묶어 ‘어머니와-나’ 출간
“어머니 이해가 소통의 시작”

20여개 다른 강의 해온 6년차 강사
‘삶을 위한 영어교육’도 곧 출판

저자의 전공인 응용언어학은 “말의 질서와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학문이다. 그가 가장 흥미를 갖는 학문적 주제도 메타포(은유)이다. 박사 학위는 영어의 리터러시(읽고 쓰기) 발달 연구로 받았다. 가장 가까운 이의 말을 기록하고 살핀 이 책도 저자의 학문 울타리 안에 있다고 할 것이다.

“배우자를 제외하면 어머니는 가장 오랫동안 (제가) 보는 사람이죠. 소통은 나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의 이해에서 시작합니다.” 지난 5년의 기록은 어머니를 더 잘 알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단다. 그 결과? “어머니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죠. 어머니의 기독교 신앙 중 기복적인 것에는 예전엔 귀를 아예 닫았죠. 어머니 말을 경청하면서 지금은 기복적인 것 안에도 다양한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결혼 뒤엔 2~3주에 한번씩 어머니를 찾아 뵙고 일주일에 두번 정도 전화를 드린다. “어머니와는 평소 대화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어머니가 집안일을 두고 저와 상의를 하게 된 것도 영향이 있겠지요.” 석사를 딴 뒤 유학을 미루고 7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 것도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다.

김성우 박사가 책 출간을 기념해 어머니와 찍은 셀카 사진.

‘어머니와 대화’ 잘하는 법이 있을까? “어머니를 나를 낳고 통제하려는 사람으로 보기보다는 생로병사가 있고 추억도 가진 한 사람으로 주목하고 대화하면 덜 잔소리로 들리지 않을까요.”

아들의 공감을 끌어낸 어머니의 사유는 어디서 왔을까? 그는 “깊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오랜 기간 경제적 어려움을 헤치며 가족을 부양하면서 터득했으리라”고 짐작했다.

그는 올해로 6년차 시간강사다. 특이하게도 그간 대학에서 20여개의 각기 다른 강좌를 개설해 가르쳤다. 경희대에서 4학기째 가르치고 있는 ‘영어로 논문 쓰기’ 강좌는 그가 방학 때 개설한 특강이 정규 과목이 된 경우다. 많을 때는 현직 교수까지 30명 이상이 수강했단다. “학생들이 논문 쓰는 걸 너무 힘들어해요. 귀국해 1년 동안 체계적으로 공부한 뒤 강좌를 열었어요. 제목이나 초록, 참고문헌 등 논문의 각 요소를 분석해 읽어가면서 쓰기를 가르칩니다.”

그는 두번째 책으로 <삶을 위한 영어교육>(가제)을 준비하고 있다. “평가나 스펙 쌓기 목적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영어교육이 되어야겠지요.” 그가 흥미를 느끼는 ‘메타포’에 대한 이해도 방편이 될 듯하다. “우리는 ‘보험 든다’고 하는데, 영어는 ‘보험을 산다’고 합니다. ‘욕’을 두고 ‘먹는다’고 하는 것도 우리만의 메타포입니다. 이런 차이의 뿌리를 알아가면 문화적 감수성도 키울 수 있겠죠.”

스스로 효자라고 생각하나요? “특별히 효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이번에 책을 안겨드리면서 작은 효도를 한 것 같아 기뻐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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