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나무.. 600번의 새봄
[오마이뉴스 이돈삼 기자]
나무를 타고 위로 기어올라 나뭇잎처럼 싱그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는 아이도 여럿이다. 나무 밑에서 먹이를 물어 나르는 개미와 장난을 치는 아이도 보인다. 나의 눈과 마주치자, 연둣빛 나뭇잎처럼 수줍게 웃음 짓는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이 한없이 예쁘다. 내 몸과 마음도 금세 연녹색으로 물든다.
살아있는 자연체험 학습장이 따로 없다. 나무와 함께 노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토실토실 여물어가는 동심이 엿보인다. 아이들을 품어주는 느티나무도 듬직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계절 언제라도 변함이 없다.
운동회가 열리는 날엔 이 나무 아래에서 엄마가 정성껏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먹었다. 어쩌다 맛본 찐달걀 한두 개도 오졌다. 장기자랑 무대도 나무 아래였다. 가끔 진행된 야외수업도 늘 이 나무 아래에서 했다. 졸업사진을 찍을 때도 나무를 배경으로 줄을 지어 섰다.
어떤 날은 나무가 드리운 숲그늘에 드러누워 낮잠을 자기도 했다. 마을의 어르신들도 농한기 때면 여기서 더위를 식혔다. 나무는 언제라도, 누구라도 다 보듬어주었다. 힘이 들 때는 격려를, 우울해 할 때는 위로를 해주었다. 뉘엿뉘엿 기운 해를 뒤로하고 찾아간 날 밤,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달빛도 그지없이 황홀했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 켜켜이 남아있다. 그때 깨복쟁이 친구들은 어디에서 뭘 하며 살고 있을까. 어떤 시인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다. 거기에 빗대, 나를 키운 8할은 아마도 이 나무였지 않았나 싶다. 지금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된 나무다.
'어른 다섯의 아름이 넘는 교정의 느티나무/ 그 그늘 면적은 전교생을 다 들이고도 남는데/ 그 어처구니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별로 없다/ 선생들이 그토록 말려도 둥치를 기어올라/ 가지 사이의 까치집을 더듬는 아이/ 매미 잡으러 올라갔다가 수업도 그만 작파하고/ 거기 매미처럼 붙어 늘어지게 자는 아이/ 또 개미 줄을 따라 내려오는 다람쥐와/ 까만 눈망울을 서로 맞추는 아이도 있다….'
고재종의 시 '담양 한재초등학교의 느티나무' 앞부분이다.
태조 이성계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을 들일 때 심었다고 전해진다. 새봄을 600여 번 맞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역사가 깊고 생물학적으로 보존 가치도 높다. 천연기념물(제284호)로 지정돼 있다. 담양의 여느 대나무보다도, 관방제림의 팽나무 고목보다도, 태곳적 이야기를 간직한 메타세쿼이아나무보다도 융융하다.
느티나무는 주변의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가족을 이루고 있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은행나무단상(杏壇)을 연상케 한다. 학교에 다니는 어린 학생들에게 넓고 푸른 꿈을 심어주고 있다. 1만 명이 넘는 졸업생들에게도 숲과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심어줬다.
학교의 상징이 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석불이 어우러진 학교숲이다. 제1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공존상을 받았다. 대회는 생명의숲과 산림청, 유한킴벌리에서 주관한다. 숲은 학교의 배경이 되는 병풍산 자락과 한데 어우러져 더 멋스럽다.
느티나무와 함께 커가는 아이들을 다시 바라본다. 아이들의 공간이 자꾸 작아져만 가는 것 같다. 내 주변을 맴돌며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안절부절하는 학교지킴이의 모습도 현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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