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는 비트코인의 운명을 알고 있을까

입력 2018. 1. 20. 09:46 수정 2018. 1. 2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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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신현호의 차트 읽어주는 남자
⑤ 비트코인 열풍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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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최고의 화제는 단연 비트코인과 암호화폐(가상통화)입니다. 비트코인에 투자해서 횡재를 했다는 얘기와 전 재산을 묶어뒀는데 가격이 하락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사연, 곧 폭락할 것이라는 우려와 정부의 정책 혼선까지…. 가히 폭발적 투기에 등장하는 모든 드라마 요소를 다 갖춘 듯합니다. 오늘은 경제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이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버블, 버블, 버블

현재의 상태는 버블(거품)일까요? ‘어떤 재화의 가격이 고유한 가치(fundamental value)에서 크게 벗어나 치솟은 상태’라는 버블의 정의로 판단해 보면, 가격이 크게 치솟았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2010년 여름 5센트에 불과하던 비트코인의 가격이 지난해 말 2만달러 가까이까지 치솟았습니다. 8년 만에 수십만배 오른 것이고, 그 당시에 누군가가 우리 돈 만원을 투자해서 지금까지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면 지금 그 가치는 수십억원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이렇게 몇 년씩 투자한 사람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그림1-A]를 보시면 최근에도 가격이 급격히 상승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튤립 파동과 남해주식회사 버블
정점 도달 뒤 몇달 만에 폭락
더 가파른 상승세의 비트코인
전문가 대부분 ‘버블’ 공개선언 한국인 4명에 1명꼴로 투자 경험
최대시장 일본보다도 높은 수치
경제시스템 위협하진 않더라도
규제 정비 등 선제조치 서둘러야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은 너무 급격해서 우리 주변의 주식 중 아무리 가파르게 급등한 것이라도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역사상 투기적 버블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과 18세기 영국의 남해주식회사 버블인데, 여기에 비교해 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데이터에 충실한 경제사학자들 덕분에 당시의 가격 변화가 최근에 잘 정비됐습니다.

[그림1-B]에서 보듯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의 경제사학자 얼 톰슨에 의하면, 1636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석달 만에 튤립의 옵션 가격은 무려 20배 치솟았고, 희귀한 튤립은 구근 하나로 당시 암스테르담의 호화 저택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튤립마니아’, <퍼블릭 초이스> 2006 ▶ https://doi.org/10.1007/s11127-006-9074-4) 남해주식회사 버블은 인류사의 빛나는 천재인 뉴턴이 투자한 전재산을 날린 후, “나는 천체의 운동을 계산할 수 있지만, 인류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구나”라고 탄식할 정도로 유명한 사건입니다. 이 자료는 예일대 국제금융센터에서 정비했는데(‘남해주식회사 1720 버블 프로젝트’),(▶https://som.yale.edu/faculty-research/our-centers-initiatives/international-center-finance/data/historical-southseasbubble)[그림1-C]를 보면 1720년 6개월간 남해주식회사 주가는 8배 정도 올랐습니다. 튤립 가격도, 남해주식회사 주가도 정점에 도달한 뒤 몇달 만에 폭락했습니다.

비트코인은 이런 역사적인 버블 사례와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급격한 가격 상승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버블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재화의 고유한 가치를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특정한 시장 상황을 버블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매우 소극적입니다만, 비트코인에 대해서만큼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공개적으로 버블이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림2-A]는 지난해 12월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비트코인의 가치가 최소한 미화 1000달러라는 것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결과입니다.(시카고대학 IGM 경제전문가 패널 조사)(▶http://www.igmchicago.org/surveys/bitcoin-ii) 참고로 이즈음에 비트코인의 시가는 1만7천달러 이상이었으니까 이 질문은 당시 시가의 95%까지 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염두에 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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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을 한 40명의 경제학자 중에서 동의를 한 사람은 둘뿐이었습니다. 이들조차도 비트코인이 범죄에 사용되는 수요 때문에 1천달러 이상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거나(윌리엄 노드하우스 예일대 교수), 1천달러 이상은 되겠지만 시가인 1만7천달러 아래로는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스티븐 캐플런 시카고대 교수). 또 불확실하다고 답한 경우에도 ‘고유 가치를 정의하거나 계산할 수 없다’(하버드대의 제임스 스톡 교수와 예일대의 래리 새뮤얼슨 교수), ‘거품이 터질 것으로 믿는다’(하버드대의 올리버 하트 교수) 등 대부분 부정적이었습니다. 결국 현재의 높은 가격 수준을 정당화하는 경제학자는 실질적으로 한 명도 없었습니다.

김치 프리미엄의 진실

두번째로 살펴봐야 할 주제는 한국에서 유독 버블이 심하다는 우려입니다. 언론은 한국 시장에서 암호화폐가 국제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현상을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부르고, 한국을 유독 암호화폐 열풍이 높은 곳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여러 지표로 살펴보건대, 한국이 국제적인 평균보다 더 과열 양상을 띠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지난해 말 우리나라 20대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한 두잇의 서베이에 의하면, 비트코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잘 알고 있다’(10.8%), ‘알고 있다’(35.1%) 및 ‘이름은 들어봤다’(44.1%)로 나타나서 인지도가 90%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일본의 경우도 유사했습니다. 글로벌 마케팅 조사업체인 마크로밀 그룹이 일본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비트코인에 대해서 ‘알고 있다’(31.4%)와 ‘이름은 들어봤다’(56.2%)를 합치면 인지도 87.6%로 한국과 비슷했습니다(‘잘 알고 있다’는 항목은 한국과 달리 조사 대상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미국의 경우는 암호화폐 전문 피아르 회사인 디토에서 미국 성인을 대상으로 구글 서베이를 수행했는데, 비트코인에 대한 친숙도를 묻는 질문에 대해 ‘전혀 익숙하지 않다’는 답변이 68%에 이르렀습니다.

투자 경험의 경우엔 한국이 일본보다도 비율이 훨씬 더 높았습니다. 우리 두잇 조사에서 우리 국민은 26.1%가 암호화폐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고, 구인구직 전문회사 ‘사람인’이 실시한 별도 조사에서도 직장인의 31.3%가 투자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일본의 경우는 투자 경험 비율이 4.7%에 불과했습니다. 종합하면, 한국인과 일본인들은 미국인에 비해 암호화폐 정보를 훨씬 더 많이 접하고 있고, 특히 한국인은 일본인에 비해서도 투자에 나선 비중이 더 높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은 거래 비중입니다. 암호화폐의 경우, 속성상 소유자에 관한 정보는 거의 축적되어 있지 않지만 대안으로 통화별 거래 현황에 근거해 대략적인 추적은 가능합니다. 크립토컴페어닷컴(CryptoCompare.com)의 데이터에 따르면, 비트코인 거래의 경우 미국 달러화와 일본 엔화로 이루어지는 거래가 각각 35~40% 정도로 1, 2등을 다투고 있고, 한국 원화와 유럽 유로화로 이루어지는 거래가 각각 5~10% 전후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다른 주요 암호화폐인 이더리움이나 리플 거래는 원화 거래가 미국 달러화에 이어 2위 규모입니다. 대체로 보아 한국의 가상통화 시장은 미국과 일본에 이은 3위로 추정되는데, 물론 이것은 한국의 경제 규모에 비하면 매우 큰 것입니다.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그림3]은 비트코인 가격을 원화로 환산한 것입니다. 원화 가격은 지난해 12월 이전까지는 달러화 가격과 거의 유사했으나, 그 이후 전체적인 비트코인 가격 급변과 함께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금융상품이라면 시장의 효율적 균형 회복 과정을 통해서 지역별 가격 차이가 지속될 수는 없겠으나, 암호화폐는 높은 거래비용과 외환거래 규제 때문에 시장 간 가격 괴리가 해소되지 않고 지속되는 것입니다. 이러 사실을 통해 보더라도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암호화폐에 대한 수요가 매우 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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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얼마나 걱정스러운 것일까요? 마치 2007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버블이 터지면서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진 일이나, 1997년 아시아 각국에서 발생한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것일까요?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시죠. [그림2-B]는 유럽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지금 또는 향후 몇년 안에 암호화폐가 금융시스템에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한 것입니다(유럽 거시경제연구센터 2017년).(▶http://cfmsurvey.org/surveys/bitcoin-and-city) 답변자 48명 중 21%는 시스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데 동의했지만, 대다수인 73%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암호화폐 시장의 버블이 전체 금융시장과 연관되어 있는 정도가 극히 미미하기 때문입니다. 은행이 암호화폐를 담보로 대출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암호화폐를 기초자산으로 한 복잡한 파생상품이 금융시스템 전체에 퍼져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암호화폐가 경제 시스템에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면 왜 우리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책을 수립해야 할까요? 두가지 측면의 우려가 있을 것입니다. 첫째는 암호화폐의 탈중앙성과 익명성에 수반되는 범죄 악용 문제입니다. 암호화폐를 이용해 소득과 자산을 은폐하고 탈세를 하거나 마약 거래, 인질 대금 등을 수수하는 문제입니다. 앞의 유럽 거시경제연구센터의 또 다른 질문은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는가’였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그림2-C]에서 보시는 것처럼, 61%가 범죄 악용 등을 언급하며 규제를 강화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31%였습니다.

또 하나 걱정해야 할 것은 버블이 터졌을 때 야기될 수 있는 손실 문제입니다. 너무 큰 버블이 터지면 막대한 손실을 입은 투자자가 발생하고, 특히 이들이 경제적 약자라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시장의 과열을 가라앉히고 버블을 축소하는 노력도 필요하고, 특히 정보가 취약한 분들이 무분별하게 뛰어들지 않도록 하는 대책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필요성 때문에 주요국 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정비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은 2016년 암호화폐를 활용한 자금세탁 방지, 과세 근거 마련, 거래소 규율을 통한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해 ‘자금결제법’을 개정했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과세 및 금융감독 당국 가이드라인 등을 정비하고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중국과 러시아는 암호화폐의 거래를 실질적으로 금지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우선 다단계 투자자 모집 등 현행법에 반해서 이뤄고 있는 범죄 행위들에 대해서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는 것과 자기 책임하에서 거래하기 힘든 미성년자의 거래를 막는 조처 등은 거의 모든 분들이 동의하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투기적 성격과 버블이 터질 경우의 위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어려운 문제는 그 이상의 조치에 대한 것입니다. 길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현재의 암호화폐 열풍을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간주하고 무시하는 길입니다. 둘째는 미국·독일 등과 같이 행정부와 감독당국 주도로 규제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일본처럼 의회 입법을 통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고, 마지막 넷째는 전면적으로 거래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확실한 답을 알 수는 없겠지만,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암호화폐 거래 규모가 너무 커졌기 때문에 무작정 눈을 감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지 버블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일부 범죄 행위가 아니라 민간 경제주체들의 자율적인 거래를 실질적으로 금지하는 중국과 러시아의 길이 우리의 대안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무분별한 투기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는 만큼, 행정부와 국회도 거래금지라는 화끈한 유혹에 빠지지 말고 민간 전문가들과 협의를 통해 신속하고 효과적인 규제 정비에 나서줄 것을 촉구하면서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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